10장.
“이전에는 배멀미를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복도에는 고함과 비명이 뒤섞여 울려 퍼졌고, 승객들은 객실에서 우르르 뛰쳐나와 문 앞을 지나며 혼란스레 엇갈렸다. 선체는 여전히 거센 파도에 휘말려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집합 지점으로 가!” 스추는 벽을 짚은 채 망설임 없이 지시를 내렸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 반응해 차례로 방을 빠져나왔다.
훠웨이닝은 카펫 위를 힘겹게 기어가며 손을 뻗어 황동 상자를 붙잡고, 주머니 속에 단단히 쑤셔넣었다.
“정신 나갔어요? 빨리 안 뛰고 뭐해요! 그 상자가 당신보다 훨씬 튼튼하다고요!” 양샤오산이 그를 와락 끌어올려 부축하며 흔들리는 복도로 함께 달려나갔다.
모든 승객이 복도에서 집합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서로를 밀치고 부딪히는 가운데, 갑자기 앞쪽에서 다시금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중앙 계단 위쪽에서 수십 개의 크리스털 조명이 동시에 파열되며, 눈부신 섬광과 함께 샹들리에가 무너져 내렸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피할 틈도 없이 파편에 휘말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달리던 사람들은 놀라 급히 멈춰 섰고, 연달아 뒷걸음질쳤다. 계단 입구는 샹들리에의 잔해로 막혀 있었고, 간신히 촛대 기둥 사이를 빠져나간다 해도, 집합 지점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투명한 유리 파편으로 덮여 있었다.
복도에 선 사람들은 주춤거리며 발을 떼지 못했다. 그때 배가 다시 한 번 거세게 흔들렸다. 자오징윈은 저도 모르게 벽에 부딪혔고, 곧바로 손을 뻗어 스추를 붙잡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스추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고, 스추는 자오징윈의 팔을 되잡으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뒤쪽 작은 계단으로 가! 위층 갑판에서 집합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자오징윈을 돌아보았고, 자오징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장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마치 정신이 번쩍 든 듯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좁고 긴 복도를 지나 작은 계단 입구가 눈앞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그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발끝까지 번졌다. 선실 안임에도 모두가 배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높이 치솟는 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을 찢는 굉음이 울렸다.
배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며 갑판 전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복도는 순식간에 깊은 낭떠러지 같은 경사로 뒤바뀌었다. 자오징윈은 본능적으로 스추를 끌어안았고, 찰나의 순간 스추는 그의 뒷통수를 감싸며 받쳤다. 균형을 잃은 사람들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통제할 수 없이 굴러떨어졌다.
천지가 뒤집히듯 요동쳤다. 등에 무겁고 둔한 통증이 밀려올 즈음, 자오징윈의 몸이 작은 계단 턱에 세차게 부딪혔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명을 터뜨리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자오징윈은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스추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무게가 팔에 고스란히 실렸다.
한편, 구르며 내려오던 훠웨이닝도 황급히 난간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머리가 계단 손잡이에 세게 부딪히며,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에 힘이 풀린 그는 그대로 계단을 따라 계속 굴러내려갈 뻔했다. 다행히도 양샤오산과 팡위가 동시에 손을 뻗어 가까스로 그를 붙잡았다.
자오징윈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그제야 뒷머리와 단단한 계단 난간 사이에 손 하나가 받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슴께가 시큰해진 그는 품 안의 스추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이마를 그의 관자놀이에 살며시 기대자, 머리카락 틈새로 익숙한 박하 향이 은근히 번져왔다.
스추는 자오징윈의 어깨에 머리를 묻은 채, 외부 세계의 모든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격렬한 혼란과 자극 속에서, 폐부를 거의 갈기갈기 찢을 듯한 구역질이 밀려왔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물며, 모든 의지를 다해 저항했다.
자오징윈은 품에 안긴 이가 살짝 떨고 있음을 느끼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보려 했다. “왜 그래요? 손을 다친 건가요?”
그러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마치 바다 위에 세게 내려앉은 듯했다. 갑판이 들썩이고, 심한 흔들림이 지나간 뒤 점차 안정되었다.
“폭풍우가 끝났습니다! 모두 당황하지 마십시오, 곧 뇌우 구역을 벗어납니다!”
선원들은 종을 흔들고 각 층을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외쳐 질서를 유지했다.
“부상자는 연회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부상자는 연회장으로 모여 주십시오! 의료진이 이미 대기 중입니다!”
그제야 자오징윈은 난간을 놓고 스추의 어깨를 잡았다.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스추는 힘없이 그를 한 번 쳐다보고, 이를 악물며 세 글자를 뱉었다. “배멀미.”
자오징윈이 물었다. “의사를 한 번 보러 갈까요?”
스추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돌아가자.”
자오징윈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무사했다. 훠웨이닝만이 머리를 감싸 쥔 채, 꽤 세게 부딪힌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반쯤 부축하듯 스추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가요, 객실로 돌아가서 좀 쉬어요.”
창룡호의 가구와 집기들은 모두 갑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에, 선실 내부는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다만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바닥이 어지러웠다.
양샤오산이 제일 먼저 소파에 풀썩 몸을 맡기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고, 린나와 팡위도 곁에 앉아 몸에 상처가 없는지 살폈다.
훠웨이닝은 맞은편 소파에 앉아 뒷머리를 만졌다. 부어오른 혹이 만져지자 몸이 한순간 움찔했다. 그러다 주머니가 갑자기 가벼워진 걸 느끼고는 급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미 휘어진 상자가 스추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스추의 손에서 되찾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게다가 자오징윈이 옆에 서 있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긴장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스추가 기계식 잠금 장치를 돌려보려 했지만, 톱니바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제가 한 번 볼게요.” 양샤오산은 몸을 숙여 가까이 들여다보고는, 손가락으로 톱니바퀴를 이리저리 밀어봤다. 황동 상자의 움푹 들어간 부분도 만져보았다. 그는 고개를 자오징윈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보스, 아까 쏘신 총알에 자물쇠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이젠 누가 와도 못 열어요!”
“어떻게 해도 안에 든 물건을 꺼낼 방법이 없는 건가?” 스추가 물었다.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황동 상자를 녹여야만 열 수 있는데, 필름이 가연성이어서 그대로는 보존할 수 없습니다.”
스추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으며, 상자를 훠웨이닝의 품에 다시 건넸다. “기념으로 남겨두죠.”
자오징윈도 한결 마음이 놓인 듯, 조심스레 스추에게 물었다. “객실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스추는 잠시 망설였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가끔씩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오징윈은 흑석공사 직원 세 사람에게 훠웨이닝을 잘 부탁한다며 간단히 당부하고, 스추를 부축해 방을 나섰다.
린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맞은편의 훠웨이닝 쪽으로 돌렸다. 위기가 무사히 지나가자, 그녀의 호기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훠 박사님, 머리는 괜찮으세요?”
“가벼운 뇌진탕인 것 같아요.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훠웨이닝이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기밀과는 상관없는 걸로요.”
“물어보세요. 말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답해드릴게요.” 훠웨이닝이 말했다. 조금 전 함께 고생한 덕분에 그와 흑석 공사 직원 세 사람의 사이가 훨씬 부드러워져서, 더 이상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양샤오산과 팡위가 서로를 힐끔 보았다. 그들은 이미 린나가 무엇을 물어볼지 짐작하고 있었다.
“전에 말씀하신, 스 처장님의 전남편, 이름이 닝자오 맞죠?” 린나가 신이 나서 물었다. “그 사람 잘생겼어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훠웨이닝이 말했다. “정보요원은 원칙적으로 사진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기록에도 닝 부관의 사진은 없습니다. 실제로 그를 본 사람도 거의 없고요.”
“그럼 얼굴은 아무도 모른대요?”
훠웨이닝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예전에 군에서 사격 대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닝 부관을 본 사람이 좀 있었다고 들었어요. 다만 저격수들은 얼굴을 가리고 출전해서, 키가 크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습니다.”
린나는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질문을 바꿨다. “그럼 그 사람과 스 처장님, 누가 더 나이가 많나요?”
“기록에 따르면, 닝 부관은 서력 907년 출생으로, 스 처장과 결혼했을 때와 희생당했을 때 모두 겨우 스무 살이었다고 합니다.” 훠웨이닝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미 최정상급 저격수였는데,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앞날이 무궁무진했을 겁니다.”
“서력 907년이라고?” 양샤오산이 불쑥 말했다. “그럼 아직 그가 살아 있다면, 보스 나이와 같겠네.”
팡위가 웃으며 그의 등을 툭 쳤다. “샤오산, 누굴 이야기 할 때마다 보스와 비교하는 거 그만해. 어젯밤에 네가 결벽증 이야기 할 때도 보스가 안 좋아했잖아, 기억 안 나?”
“보스 앞에선 다신 그런 말 안 해요.” 양샤오산이 말했다. “지금은 사석이니까요. 두 사람 다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또 하나 걸렸네, 그렇지?” 팡위가 웃었다.
린나도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스 처장님 나이는요?”
스추 이야기가 나오자, 훠웨이닝은 무심코 객실 문 쪽을 힐끗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서력 900년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바로 현윤 황제의 개혁 100주년 때죠.”
“그럼 스 처장님과 전 남편은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나는 거네요.” 린나는 이 가십에 흥미를 느끼고 혀를 차며 말했다. “스 처장님이 자기보다 어린 남자를 좋아하다니, 정말 의외예요.”
팡위가 말했다. “너도 그렇잖아?”
“누가 그래?” 린나는 소파에 기대며 반박했다. “나도 예전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사귄 적 있어.”
팡위가 놀란 듯 물었다. “진짜야?”
린나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말해주지 않을 거야.”
팡위는 린나의 그런 알 듯 모를 듯한 태도에 익숙해져, 별다른 질문 없이 웃어넘겼다. 그는 몸을 돌려 훠웨이닝에게 말했다. “훠 박사님, 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제가 알기로,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줄곧 물과 불처럼 상극이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엘란티스로 가서 증기 비행선을 조사하게 된 건, 서대륙의 전황을 보고 양측이 손을 잡아 외부에 대응하기로 한 겁니까?”
훠웨이닝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유감이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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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를 한차례 겪은 뒤였지만, 스추의 객실은 제법 단정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놓인 물건이 거의 없었고, 바닥에는 산산이 부서진 꽃병 조각들이 흰 장미 한 송이를 짓누르고 있었다. 꽃잎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자오징윈은 스추를 소파에 앉혀 쉬게 한 뒤, 몸을 숙여 부서진 꽃병 조각과 흩어진 꽃잎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욕실 안 쓰레기통에 그것들을 버리고, 손까지 깨끗이 씻은 다음에야 다시 나왔다.
스추는 여전히 소파에 기대어 움직이지 않았고, 살짝 찌푸려진 미간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오징윈은 서랍을 열어 유리컵을 꺼내 물로 두어 번 헹군 뒤, 보온병에서 온수를 반 컵 따라 스추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물 한잔 드실래요?”
스추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자오징윈은 유리컵을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전에는 배멀미를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스추가 차분히 대답했다.
“저는 안 변합니다.”
“……” 스추가 눈을 들어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자오징윈도 아무 말 없이 스추의 오른손을 잡아 천천히 장갑을 벗겼다. 희고 고운 손등의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입을 열려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해 스추의 소매를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그제야 스추의 손목 양쪽의 반달 모양의 상처가 또렷이 보였다.
스추가 반응하기도 전에, 자오징윈은 반쯤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으로 종아리를 잡아 단화와 양말을 함께 벗겼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자, 발목 양쪽에도 비슷한 상처가 선명히 드러났다.
“손 치워.” 그는 지금 힘이 없었고, 자오징윈과 다툴 기운도 없었다.
자오징윈은 손끝을 스추의 발목 위로 난 상처에 살며시 대고 부드럽게 문지르자, 스추가 가볍게 신음하며 다리를 빼려 했다. 하지만 자오징윈은 놓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프십니까?”
스추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숨을 내쉬며 웃었다. “아프지 않고, 간지러워요.”
자오징윈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 “족쇄 자국이네요. 안전국에서 얼마나 오래 심문당하셨습니까?”
“그건 군사정보국 소관입니다.”
“압니다.”
“이젠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죠.” 스추가 담담히 말했다.
자오징윈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과 나는,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닌 겁니까?”
“그럼 뭐죠?”스추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제 전남편 이름이 자오징윈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 우리 둘뿐인데, 그런 말로 누가 속겠어요?” 자오징윈이 되물었다.
“……” 스추는 잠시 말없이 눈길을 피하다가 이내 말했다.
“신발 좀 신겨 주세요.”
자오징윈은 허리를 굽혀 스추의 양말과 신발을 신겨 주었다. 시추는 바로 발을 거둬 들여 카펫 위에 내디뎠다. 자오징윈은 일어서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방 안은 고요했고, 스추는 옆 사람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그는 애써 눈을 감았지만, 지나치게 긴장했던 신경이 어느새 스스로 느슨해졌다. 깊게 쌓인 피로가 맹수처럼 덮쳐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자오징윈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여러 번 망설이다 결국 스추의 손등의 선명한 붉은 자국이 신경 쓰여 한마디 꺼냈다. “당신은……”
스추는 소파에 기대어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눈을 감았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만큼 조용했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지루한가?” 자오징윈은 한참 마음속으로 되새기다 이내 기운이 쭉 빠졌다.
그는 한 손으로 소파 등받이를 짚으며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장관, 자고 계신 거죠?”
스추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긴 호흡이 이어졌고, 짙은 속눈썹이 얼굴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몇 가닥 긴 머리카락이 볼을 따라 흘렀다.
한참을 바라보던 자오징윈은 손가락을 들어, 스추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겼다. 잠시 멈칫하던 그는, 결국 이끌리듯 다시 다가가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닿았다. 차갑고, 부드러웠다.
그는 조금 몸을 물리고서 스추를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꺼풀은 꿈쩍하지 않았고, 여전히 깊은 잠 속에 잠겨 있었다.
“이렇게 곤히 잘 줄은.” 자오징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망스러운 기운이 살짝 스며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스추의 콧등에 걸쳐 있던 안경을 벗겼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아, 스추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 좀 더 편안히 쉴 수 있게 했다.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걱정들이 조금씩 사라지자, 자오징윈은 답답한 기분에 눈앞에 놓인 은테 안경을 무심하게 만졌다. 그러다 문득 안경을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깨달았다. 이 안경은, 스추가 처음 만났을 때 썼던 바로 그 안경이라는 것을.
그때는 그가 열여덟 살이던 여름 끝자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