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장서는 용창의 가관례加冠礼 전날 밤에서야 문득, 3만 년 전에 자신이 닥치는대로 주워온 이 작은 용요괴가 지금은 뜻밖에도 이렇게 크게 자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밤 그가 옥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왔을 때, 적상전赤霜殿 앞뜰의 그 단풍나무는 한창 기세 좋게 피어 있었고, 휘날리는 단풍잎은 앞뜰의 절반을 차지했다. 장서는 달밤을 밟고 돌아왔는데, 앞발이 정전에 들어서자마자 뒤에서 용창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장서.”
장서가 뒤돌아보니, 용창은 나무처럼 꼿꼿하게 달 아래에 서 있었다. 장신의 몸은 매끄럽고 곧아 보이며, 머리는 한 쪽으로 치우쳐 등 뒤로 게으름을 발산했고, 서늘한 바람이 스쳐, 그의 귀밑머리의 잔머리가 일렁였다.
장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기색으로 걸어가서, 오른손의 접힌 부채를 들어 그의 이마를 향해 가볍게 두드릴 뿐이었다. “채신 없기는. 나를 군상이라 부르라고 너에게 몇 번이나 말했잖아?”
용창은 아랑곳하지 않더니, 손을 들어 이마 앞에 멈춘 부채 자루를 잡고, 부채 자루를 따라 앞으로 더듬어 만졌다. 그는 손가락 마디를 내밀 때 매우 빠르게 손바닥을 벌려, 장서의 손등 전체를 손바닥으로 감쌌고, 얼굴로는 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장서.”
장서는 멍해졌다.
이 아이의 손은 언제 그의 손을 통째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두터워졌을까?
다시 보니 만년 된 나무의 뿌리가 나무단의 그 한 뼘의 곤륜토昆仑壤에 휘감겨 있고, 가지와 줄기로 해와 달의 본질을 흡수하여, 뿌리 줄기가 이미 땅보다 몇 자나 더 크고 튼튼했다. 용창이 좀 전에 있었던 위치는 곤륜토와 나무뿌리가 뒤섞여나온 구덩이坑底로*, 평지에서 두 뼘의 계단을 낮춰서야 비로소 장서가 그와 대등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용창이 발을 들어 구덩이 바닥에 내딛자, 장서의 눈 앞에는 오로지 용창의 금빛으로 된 어두운 무늬를 수놓은 옷깃만이 보였다.
* 坑底 구덩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원문 흐름을 따르면 둔덕 같기도 함.
그는 반 걸음 뒤로 물러서서 용창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고, 부채를 접어서 손으로 빙빙 돌리다가 네 손가락으로 눌러 팔 옆으로 맸다. 장서는 손을 얹고 서서 턱을 약간 치켜올리며 눈앞의 사람을 똑똑히 훑어보았다.
그가 막 용창을 주운 해에, 용창은 4만여 세였다. * 四万余岁
회수淮水의 변두리는 오늘날처럼 푸른 풀이 무성하지 못했다. 그때는 날리는 모래와 돌이 가득했고, 강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렀으며, 강둑의 물건들은 자칫하면 파도에 휘말려 파도와 함께 사라졌다. 일전에 그는 곤륜산昆仑山에 가서 흙을 캐고 이곳을 지나 잠시 쉬려다가, 본래 높은 곳이라 얇은 물목에 있는 까만 돌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엎드려 있는 작은 용이었다. 장서가 영력으로 그것의 영해를 탐문해보니, 비로소 그것이 이미 성인으로 수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때 두 눈이 굳게 감긴 채 잠들어 자신이 처한 상황의 위기를 전혀 몰랐다.
장서가 그의 꼬리를 스쳐흐르는 강물들이 흘러갈 때 세밀하고 고운 결의 핏줄기를 보지 않았다면, 결코 그의 온몸 검은 비늘 아래의 가득한 상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찬 강 물결이 이 용을 휩쓸자, 장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작은 짐승을 연한궁烟寒宫으로 데리고 가서 이 단풍나무와 함께 키웠다.
처음에는 그 새로운 느낌에, 그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어 친히 약을 발라주고 물을 먹였다. 사흘째가 되는 날까지 작은 용이 여전히 깨어나질 않자, 그는 등을 돌려 그것을 뜰에 던졌고, 손바닥을 뒤집어 문을 닫고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그날 밤 해시가 되기 전에, 누군가가 적상전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장서는 침상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눈을 뜨자, 문 앞에 벌거벗은 소년이 서 있었는데,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 흉악한 용의 뿔이 보였다. 두려움를 모르는 눈은 침상에 반쯤 누워 있는 그를 물끄러미 주시했다.
“깨어났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났으면 집에 가봐, 적상전은 영총灵宠을 안 키우거든.”
소년의 눈빛이 그의 옷깃을 힐끔거렸다.
장서가 손을 흔들자, 소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비단의 홑저고리를 입게 되었는데, 허리띠가 없어 뒷자락이 문지방까지 끌렸고, 소매 끝의 팔도 몇 치나 나왔다. 온 몸의 위 아래, 가려야 할 부분은 하나도 가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장서 둘째 형의 옷이다. 둘째 형의 침전은 그에게 금제禁制를 두지 않았기에, 그는 별 생각 없이 궤짝에 있는 옷을 손에 닿는대로 이 아이에게 던졌다. 뜻밖에도 일이 이런 식으로 될 줄은 몰랐다.
장서는 신경 쓰기가 귀찮아서 눈을 감고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치우고 가렴.”
방안은 더 이상 인기척이 없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자 입구에서 약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 아이는 옷을 뒤로 치워 몸에 잘 싸매고 맨발로 장서를 향해 걸어갔다. 침상 옆으로 걸어가서 길고양이처럼 장서의 늘어진 소매를 헤집었다.
장서가 곁눈질을 하자, 그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장서가 시선을 거두자, 그는 또 다시 장서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장서는 침상에서 일어나 책상다리를 하고 무릎을 구부려 앉았다. 오른팔 팔꿈치를 굽힌 무릎 위에 대고, 부채자루를 손에 쥐고 왼손 손바닥을 차례로 내려쳤다. 동시에 내려앉은 눈길로 이 송아지를 노려보는 것은 마치 사람을 수습하려는 것 같았다.
소년은 기세가 좋지 않자,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 두 방울이 글썽였는데, 떨어트리지 않고 장서가 보기를 기다렸다. 장서가 무관심한 것을 보고 그는 소매를 팔까지 둘둘 말았다. 진흙이 묻어난 팔뚝에는 크고 작은 아직 낫지 않은 흉터들이 있었다.
장서의 눈빛이 좀 누그러졌다.
이때 눈물이 툭 떨어지자 소년은 긴 다리 옆에 엎드려 작은 팔을 그의 품에 뻗었다. “아파.”
그래서 이렇게 머물렀다. 한 번 머무르니 3만 년이다.
-
장서가 그에게 물었다. “네 이름은 뭐니?”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서 집은 어디인지, 어느 용족의 혈통에 속하는지 물었다.
모두 하나를 물으면 셋을 모른다 답했고, 4만 8천년 동안 이 세상을 떠돌다가, 며칠 전 큰 요괴에게 괴롭힘을 당해 실수로 회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기슭에 올라섰고, 더는 도망칠 힘이 없어 자포자기하여 기슭에 쓰러졌다고 했다.
연한궁은 일년내내 햇볕이 들지 않으며 초목도 자라지 않는다. 유일한 단풍나무는 곤륜산의 흙이 있어야 키울 재간이 있다.
장서는 전 바깥에 있는 단풍나무 씨앗이 묻혀 있는 곤륜토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에게 말했다. “용창이라고 부르자.”
용모가 밝은 모양으로, 풀과 초목처럼 푸르고 넓다는 뜻이다.
“용창, 용창.” 그는 하하하고 바보스레 웃고 두 번 읽어 익혔는데, 별안간 전 바깥의 고귀한 새가 빙빙 돌며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자 발을 들고 뛰쳐나갔다. 그렇게 “용창”이라는 두 글자는 쫓고 쫓기며 장난을 치느라 뒤돌아서듯 잊어버렸다.
후에 장서는 그를 끌어 서안 앞으로 가서 붓을 들고 먹을 찍게하여 자신의 이름을 적도록 가르치고, 독서를 가르쳤으며, 글자를 가르쳤다. 그가 자신을 칭하는 말을 배운 후, 두 번째로 잘 외운 이름은 바로 장서였다.
장서가 장서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후의 일이다.
적상전에는 평소에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다. 날짐승이 가끔 실수로 침입하는 것 외에 매일 그와 같이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속도로 자라는 단풍나무다. 단풍나무는 소리가 없고, 장서도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는 적상전에 틀어박혀 번민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는데, 불과 사오 일 만에 사람이 나른해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장서는 비록 말이 없었지만, 외려 눈에 새겨두었다. 어느 날 밥을 먹고난 후, 그는 입구의 옥계단에 앉아 머리를 받친 채 혼곤히 졸았다. 그런데 뜰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한 줄기 불어오더니, 땅에 떨어지며 이어서 검은 깃털의 시위 모양으로 변했다. 손에 들린 새장, 그 속에는 성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악조恶鸟 한 마리가 갇혀 있었다.
그것은 그가 장서의 호칭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그 사람은 무릎을 꿇어 경례를 하고 “군상”이라 부르자, 장서는 용창의 뒤 본당에 있는 몇 안건 앞에서 눈을 거두고, 손 안의 화본에서 뜰에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내려 둬.”
그 사람은 대답하고 새장을 내려놓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또 검은 연기가 되어 가버렸다.
용창과 뜰을 사이에 둔 고획새姑获鸟는 서로 노려보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몸이 근질근질한지 고개를 돌려 전 안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장서는 일찌감치 화본으로 눈을 돌렸기에, 작은 용이 바닥에 앉아 고개를 들어보았을 때 장서의 머리 위에 있는 흰 옥관만 보였다.
이윽고, 장서의 목소리가 화본 뒤편에서 유유히 들려왔다. “네게 줄게, 가서 놀렴.”
그는 환호하며 깡충깡충 뛰어 뜰로 달려가 새장을 주웠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군상은 한순간에 내팽겨쳐졌다.
그 이후로도 때때로 적상전에 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남자와 여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도 있었다. 장서에게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군상을 부르며, 외부의 많은 잡다한 일들을 쏟아냈다. 그가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천계”, “공격”, “사상자”, “투항” 같은 말이었다. 장서가 그의 면전에서 크고 작은 일을 상의하는 것을 피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때에 그는 옆에 쪼그려 앉아 새를 찾았다. 그는 천계의 현릉제군玄凌帝君의 명호名号를 들을 때만 한바탕 움직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산만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장서를 군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장서를 군상이라 부르지만, 그는 부르지 않는다. 만약 언젠가 천하의 그 누구도 그를 군상으로 추앙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마 이런 식으로 그를 부르는 것을 고려해 볼 것이다. 그 자신도 몰랐다. 뜻밖에도 그때부터 장서에게 있어서 세상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려고 마음 먹었음을.
며칠 동안 고요했던 적상전에, 마침내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전 안에 들어와서 아뢰지 않고 오만방자하게 굴었고, 막 사냥한 짐승과 술병 두 개를 손에 들고는 문도 두드리지 않고 장서의 공무실로 향했다.
사람은 만나기 전부터 웃었고, 발소리는 아직 수척 밖인데, 인사는 아득히 전 안으로 퍼져 들어왔다.
“장서야 내 동생, 네가 요즈음 장충长虫 한 마리를 영총으로 삼았다길래, 오늘 특별히 좋은 음식과 술을 챙겨왔다. 형에게 아끼는 그를 보여주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창은 현색의 사슴가죽 장화 한 켤레가 입구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고, 불청객의 늘씬한 종아리를 훑으며 위로 향했다. 그 사람은 허리춤에 현철 장도를 차고 소매를 조여 단장했다. 전신의 검은 비단옷은 마치 처음 본 날의 장서가 그의 몸에 걸쳐 준 옷감 같았다. 용모는 매우 영준한데, 장서가 온화하고 정교한 것과는 다르게, 도리어 칼로 깎아지른 듯 트인 것이 날카롭고 시원스럽다. 깊이 있는 눈매, 더욱 뚜렷하게 오똑한 콧날, 색이 연한 눈, 한 번 웃으니 방종 맞고 풍류스러우며 건들건들한 느낌이 있다.
원래 군상의 이름은 장서였어.
“둘째 형님.” 장서는 서책을 덮고 일어나 마중나왔다. “허튼 소리 마시지요.”
이어서 용창에게 일어서라 손짓하며 그에게 말했다. “지상군持觞君, 장결长决.”
용창은 눈을 내려깔고 무관심한지 고개를 숙이고 발을 보며 못 들은 척했다.
“이게 바로 그 작은 장충이구나?” 장결은 하하 웃으며 손을 뻗어 용창을 툭툭쳤다. 용창은 몸을 기울여 피하려 했는데, 장결의 재빠른 몸놀림에 비교할 수 없어 뜻밖에도 피하질 못했다.
장서가 대답하지 않고 탁자 위의 부채를 챙겨 들고는 스스로 전 밖을 항하여 걸어가자, 방 안의 어른 하나와 아이 하나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은근히 힘겨루기를 하였다.
용창은 장서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은 아직 장결에게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필사적으로 애써도 헤어나오질 못하는데. 마음속으로 장서가 자신을 이렇게 무시하는 것에 불만을 품게되고, 더욱 억울해지자 목소리를 내어 소리쳤다. “장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은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다시 자세를 되찾고 여유롭게 떠났다. 용창의 눈에 남은 것이라곤 옷자락이 펄럭이는 마지막 잔상 뿐이었다.
“정말 장서가 가르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장결은 몸을 굽혀 웃으며 말했다. “규율을 조금 모르나 보네. 장서라는 두 글자를, 네가 경칭도 없이 부를 수 있는 것이더냐?”
용창은 어깨를 비틀었지만, 어깨 너머의 굳은 바위같은 손바닥을 떨쳐버릴 수 없어, 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어 고개를 돌려 장결을 무시하며, 옆으로 길게 목소리를 내 소리쳤다. “장서!” 어조에 분함이 서려있고 얼굴의 기색은 전혀 딴 사람 같다.
뜰에서 끝끝내 냉랭한 외침이 들려왔다. “둘째 형님.”
“좋아, 좋아, 놀리지 않으면 되지.” 장서가 말하자 장결은 손을 떼고, 용창의 뺨을 주무르며 그를 밀어냈다. “가자, 둘째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줄게.”
용창은 기회를 얻자, 내빼듯이 장서를 향해 달려가 장서의 몸 옆으로 숨어서 걸음을 옮기려 하지 않았고, 장서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어 그가 장결에게 꼬집혀 빨갛게 물든 곳을 보였다.
장서는 흘끗 훑어보고는 용창을 뒤로 숨겼고, 스스로 그 안에서 기뻐하며 휘파람을 불며 전에서 나오는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용창이라 부릅니다.” 장서가 말했다. “저의 전 사람이니, 둘째 형님은 좀 자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