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英 2025. 5. 15. 17:55
“당신은 아직 우리 세계의 게임 규칙을 잘 모르는군요.”



귀빈칸 객실 구역.

길고 밝은 복도를 지나 스추는 객실 앞에 멈춰섰다. 훠웨이닝은 그 뒤를 따라오자, 그는 무심히 힐끗 쳐다보았다. “훠 박사는 참으로 성실하시네요. 혹시 제가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칠까 봐 감시하러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훠웨이닝이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말씀하시죠.”

훠웨이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가능하면 방 안에서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스추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넘겨 뒤쪽을 바라보았다.

훠웨이닝이 돌아보자 자오징윈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과 같은 구역에 방을 배정 받았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자오 사장님도 객실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만찬 후의 행사에는 참석 안 하십니까?”

자오징윈은 걸음을 멈추고, 스추의 얼굴에서 훠웨이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음.” 그는 대꾸를 짧게 하고는 맞은 편 객실로 들어갔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훠웨이닝은 어리둥절했지만, 더 따져 물을 틈도 없이 재처 입을 열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추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더니 객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훠웨이닝도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그는 몸을 돌려 문을 단단히 닫았다.

귀빈칸의 일반 객실이라 해도 그리 넓지는 않았다. 욕실 하나를 제외하면, 자기 꽃병이 놓인 호두나무로 만든 작은 사각 테이블 하나에 녹색 벨벳 소파가 있었으며, 나무 병풍 뒤로는 침대와 협탁이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추는 은테 안경을 벗어 사각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고, 곧장 소파에 몸을 기대듯 앉았다. 안경이라는 가림막이 걷히자, 그의 눈매는 한층 차가워 보였다. 훠웨이닝은 심문실에 처음 마주했을 당시, 그가 던진 날카롭고 인상 깊은 눈길을 잊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진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쉰 뒤,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스 처장,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거 아닙니까?”

“그런가요?”

“겉보기엔 멀쩡한 것처럼 보여도, 며칠간 지켜보니 식사를 거의 안 하시더군요. 혹시 자백제의 부작용 아닌가요? 약물 실험 단계에서도 구토 반응을 보인 피실험자들은 많았습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된 경우는 없었어요.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스추는 말이 없었다. 훠웨이닝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매일 밤, 옆방에서 걸어 다니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번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걸 보기도 했고요. 제 짐작으로는 수면에도 문제가 생기신 것 같습니다. 듣기론 그들에게 수면 박탈 심문을 당하셨다고 하던데, 그건 사람의 신경에 아주 치명적입니다. 이렇게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치료를 빨리 시작해야 해요.”

“우리는?” 스추는 그 단어를 되뇌며 흥미로워했다. “용감하군요, 훠 박사.”

“그렇습니까?” 훠웨이닝은 당황한 눈치였다.

“제가 당신이라면, 제 앞에서 자백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훠웨이닝의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그는 애써 차분히 설명하려 했다. “저도 엄연히 의사입니다. 당신이 원래의 상태를 되찾아야 임무 성공성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물론 저는 당신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지만, 동시에 협력하라는 지시도 받았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같잖습니까.”

스추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곤,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아직 우리 세계의 게임 규칙을 잘 모르는군요.”

“뭐라고요?”

“졸업하신 지 오래되지 않으셨지요?”

“작년 9월, 골로 제국 왕립의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훠 가는 구당에서 차츰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요. 당신이 보안국과 인연을 맺으신 이후, 집안에서는 마지막 희망으로 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과장될 정도는 아닙니다.” 훠웨이닝은 다소 민망한 듯한 기색을 보였다.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났어요.” 스추가 불쑥 말했다. “혹시 내가 당신을 죽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훠웨이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보내기로 한 전보가 끊기면, 보안국에서 이상을 눈치챌 테니까요.”

“눈치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무렵이면 저는 이미 서대륙에 도착해 있을 테고, 아무도 제 행방을 알아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보증한 저우 국장께서 그 책임을 지게 되겠지요!”

“그게 바로 그들이 바라는 결과 아닐까요?” 스추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훠웨이닝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는 마침내 스추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했다. 군사정보국의 작전처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신당 내 저우홍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저우 국장님과는 부자나 다름없는 사이 아닌가요? 그분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주셨는데, 설마 그 신의를 저버리려는 겁니까?”

“그럼 당신이 직접 계산을 좀 해보시죠.” 스추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보안국은 어떻게든 제 혐의를 확정지을 거고, 결국 사형을 선고하겠죠. 하지만 여기서 당신을 죽이고 도망치면, 선생님은 직위에서 해임되거나, 기껏해야 강등 처분을 받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그분의 상장 계급 하나로 제 목숨 하나를 바꾸는 셈인데, 당신은 수지가 맞다고 보시나요?”

“……” 훠웨이닝은 입술을 떨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 저를 감시하며 엘란티스로 동행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집안 사람들이 꽤 기뻐했겠죠?” 스추가 다시 물었다.

훠웨이닝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지만, 문득 집안 어른들의 기대가 떠올랐다. 떠나기 전날, 어머니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몇 번이고 당부했던 기억도.

“당신이 왜 선택됐는지,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생각해봤습니다.” 훠웨이닝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바짝 메말라 있었다.

“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군요. 투진제를 투여한 게 효과를 냈고. 그 덕분에 안정보장국장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유학 경험도 있고, 서대륙에 대한 이해도 있으니. 그래서 이런 귀중한 기회를 받은 것이라고.”

훠웨이닝의 시선이 곧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유감이지만, 하나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당신은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스추는 여전히 인내심이 묻어나는 어조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들은 맹수의 우리를 열어놓고는, 닭 한 마리도 제대로 묶지 못하는 풋내기에게 줄 하나만 쥐여주었습니다. 자, 당신 생각엔 그런 학생이 맹수를 길들일 수 있는 조련사일까요?”

맹수에게 던져진 먹잇감이자, 보잘것없는 희생양이다.

생각이 또렷해질수록, 훠웨이닝의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마치 얼음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스추가 취조실에서 보여준 협조적인 태도는, 자신이 지금 감시하고 있는 이가 최정예 요원이라는 사실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단 안전국의 손을 벗어난 지금, 그는 그와 맞설 만한 어떤 수단도, 자격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당신에게 거짓 신분 하나조차 마련해주지 않았습니다.”

“……”

“당신은 보안국에 기여한 건, 당신이 선택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른 무관한 사람들에 비해, 저는 당신을 죽일 때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마음 아파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저 지난 수모를 씻는 상쾌함만 있을 뿐이니, 이 점에서만큼은 보안국이 아주 치밀하게 계산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스추는 말을 마치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훠웨이닝은 순간 뒤로 확 물러나며, 허리 뒷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뒤이어 그는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스추를 겨눴다.

스추는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선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총구를 흘겨보며 말했다. “지금 제 상태로도 첫 발은 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목을 꺾을 수 있단 겁니다. 훠 박사, 시도해보고 싶으신가요?”

훠웨이닝은 두 손으로 총을 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몸을 굳혔다.

“어쩌면 당신을 살려둘 수도 있고요?” 스추는 생각하며 말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보안국과 통신할 때 쓰는 코드북을 제게 넘길 수 있겠죠.”

“코드북은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훠웨이닝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당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가요?”

“네, 어떤 상황이든 제 소임을 다할 겁니다.”

훠웨이닝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스추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에 스추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아직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요.”

훠웨이닝은 여전히 의심스러웠기에,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당신은 보안국의 계획이, 제 인간성에 대한 시험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스추는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이게 제가 두 번째로 드리는 조언입니다. 우리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인식할 것.”

훠웨이닝은 총을 서서히 허리춤의 홀스터에 집어넣었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는 걸 그제야 느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스추가 부정하지 않자, 훠웨이닝은 덧붙였다. “저는 애초에 ‘감시’를 당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항상 당신을 보조하는 입장에 있다고 여겼고, 방금도 치료를 강요하려던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조언을 드린 겁니다. 당신이 절 신뢰하긴 어렵겠지만, 지금 상태는 정말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스추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철옹성처럼 단단한 태도 앞에서, 훠웨이닝은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는 체념한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돌아서며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한마디 덧붙였다. “스 처장, 어쩌면 배에 있는 의무실에서 수면제를 좀 받아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훠웨이닝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 여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퍼져 나가 맞은편 방 안까지 스며들었고, 자오징윈은 그 소리에 잠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소파에 앉아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 셔츠 목덜미 단추 두 개는 풀려 있었고, 펜던트처럼 목에 걸고 있던 반지는 어느새 손끝에 쥐어진 채 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연달아 문 열리는 소리, 닫히는 소리, 멀어져 가는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자오징윈은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문을 조금 열어보니, 훠웨이닝의 뒷모습이 다른 선실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문을 완전히 열었고, 이때 복도는 고요했다. 바로 맞은편 방 문은 여전히 꽉 닫혀 있었다. 그는 문틀에 기대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마치 저 두꺼운 흰 참나무 문 너머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듯, 묵묵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빈칸의 연회는 깊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적막 속에 저 멀리서 은은하게 흘러드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낭만적인 왈츠였다.

그때, 문틈 아래로 새어나오던 빛이 갑자기 꺼졌다. 방 안 사람이 불을 끈 것이다.

자오징윈은 눈을 내리깔며 돌아섰다. 그는 살며시 문을 닫았다.

어둠에 잠긴 객실 안, 둥근 선창 창문을 통해서만 미약한 빛이 스며들었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그 빛조차 몹시 희미했다. 스추는 편안한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허리를 굽힌 채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이 풀리면, 머릿속 깊은 곳에서 쏟아지는 피로가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눈만 감으면 그대로 곯아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눈앞엔 본능적으로 새하얀 섬광이 번쩍이고 귀에는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들려왔다. 그는 강제로 깨어나야 했고,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스추는 무감각한 동작으로 손을 내리고, 잠을 자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결국 몸을 일으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주황빛 불꽃이 긴 손가락 사이에 끼워졌다. 그는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잔뜩 긴장된 신경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지만, 이내 위장이 격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황급히 담배를 껐다. 복부를 손으로 눌렀지만 밀려오는 구토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문제는 위 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허한 속으로는 무엇도 토해낼 수 없었다.

꺼진 담배가 카펫 위로 떨어졌다. 방 안의 유일한 불빛마저 사라지자, 밤은 더욱 깊어졌다. 스추는 가까스로 소파 끄트머리에 앉았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앞머리를 적셨고, 그는 눈을 감은 채 묵묵히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훠웨이닝의 판단은 옳았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그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왜 이런 지독한 후유증이 며칠째 계속되는지. 자백제의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환각제를 삼켰다. 두 가지 고위험 정신 약물이 동시에 투입했으니, 제정신으로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제 그는 어떤 종류의 정신작용 약물도 복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수면제처럼 진정 및 수면 유도 효과를 가진 약물조차도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날 심문실에서, 스추의 기억은 자백제가 주입된 그 순간에서 끊겼다. 그 이후의 장면들은 마치 고통스러운 폭풍처럼 산산이 부서진 채 머릿속을 휘몰아쳤고, 그것이 환각인지 악몽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호텔 객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침대 곁에는 군사정보국 총무처 처장이자 저우훙의 부관장인 펑보룬이 앉아 있었다.

펑보룬은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군사정보국 국장 저우훙이 한 건의 비밀 첩보를 입수한 뒤, 즉시 내각에 파견 요청을 올렸고, 스추를 엘란티스 왕국으로 보내 임무를 수행하게 하겠다고 명시했으며, 그에 대한 보증도 직접 서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내각 내에서는 신당과 구당이 이를 두고 격렬히 충돌했지만, 결국 합의를 이루었다. 그렇게 스추를 서대륙으로 파견하는 안건이 통과되었다. 단, 보안국 소속 감시 인원을 한 명 동행시킬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그가 스추를 심문실에서 데리고 나올 당시, 보안국 역시 이미 감시관의 인선을 확정한 상태였다. 특수요원 훈련을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의학 박사 한 명이었다.

이때 스추는 비로소 훠웨이닝의 신분과 배경을 알게 되었다. 심문실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한 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아 ‘기밀’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힌 작전 문서를 건네받았다. 밀봉을 뜯고, 그는 한 장 한 장 문서를 넘기며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펑보런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고, 호텔에서 수정 재떨이 하나를 가져왔다. 스추가 문서를 모두 읽은 뒤, 그 서류들은 두 사람의 시선 아래에서 천천히 재로 변해갔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 작전처 전원이 감찰을 받고 있어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이에 국장께서 외부의 용병을 고용해 임무를 보조하게 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용병이라니?” 스추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선생님께서 참 신경 많이 쓰셨네요. 하지만 돈 받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죠.”

“국장의 판단을 믿어야 합니다.” 펑보룬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하세요, 저녁 일곱 시, 란두 호텔입니다.”

그 말을 떠올리자 스추의 마음이 조용히 일렁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는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개의 방문, 하나의 복도를 사이에 두었다. 이것은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사람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밤이었다.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 함선의 창밖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검은 파도를 일으키며 거세게 출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