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似我闻/君有疾否

2장.

유유𓅨🦋 2026. 1. 6. 13:24
세예, 나는 당신을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습니다.



만약 장안의 아직 혼인하지 않은 소저들에게 마음에 드는 낭군을 뽑게 한다면, 수석에 오를 사람은 틀림없이 현 조정의 어사대부 소세예일 것이다.

소세예는 출신 가문이 현혁[각주:1]했다. 조상 3대가 모두 명장이었고, 그의 부친 소결(苏决)은 선제가 어린 후계를 맡긴 신하였으며, 그 자신 또한 삼공의 반열에 올라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거만함도 없이, 점잖고 학식이 드러나는 인품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함에 늘 공손하고 예의가 있었다. 그 때문에 혼담을 넣는 이들은 거듭 거절당하고도 그를 사위로 들이려 했다.

하지만 초명윤은 늘 소세예의 예의 바름 속에, 사람과의 거리를 절묘하게 재는 계산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겉보기에는 온화했으나 태도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조정에서 여러 해를 함께했고 초소 양당이 대립하는 사이였지만, 초명윤은 이런 사람과 깊이 교류할 뜻이 없었다. 그래서 소세예와의 사이는 끝내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하고 마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더는 얽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초명윤은 대전에서 나와 퇴청 후 궁을 나서는 백관들 사이에서, 단번에 장안의 사위라 불리는 그 인물의 지초와 난초, 옥나무에 비유되는 고결한 풍모의 모습을 찾아냈다.

“소 대인, 잠시만.”

소세예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물었다. “초 대인, 무슨 일이십니까?”

“음.” 초명윤이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오래 생각해온 말이 있는데, 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말씀하세요.”

초명윤이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신 뒤, 소세예의 옆에 늘어진 손을 붙잡았다. “정말로……들으시겠습니까?”

“응할지 말지를 논할 게 뭐 있습니까.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시면 됩니다.” 소세예는 모른 척 손을 빼려 했으나, 오히려 더 단단히 붙잡혔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곁을 지나가는 관원들을 흘끗 보며 말을 이었다. “요즘 도성에서는 초 대인께서 남색을 즐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소 모는 괜한 오해를 피하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피하려 드시는군요?” 초명윤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이내 눈매를 휘며 웃었다. 그리고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두 손으로 소세예의 손을 붙잡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세예, 나는 당신을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습니다.”

궁도를 걷던 백관들의 발걸음이 순간 일제히 휘청거렸다.

“……” 소세예는 잠시 얼어 있다가, 곧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농담은 재미없습니다, 초 대인……”

“나를 믿지 못하겠단 겁니까?” 초명윤은 그의 말을 끊으며,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천지가 증명할 것입니다. 나는 이 일생, 오직……콜록……당신 한 사람과 함께 늙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은 원하십니까?”

“원하지 않습니다.” 소세예가 담담히 답했다.

“짐작은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감히 당신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겁니다.” 초명윤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야 마침내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설령 얻지 못하더라도, 결국 한 번은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요.”

“초 대인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당신과 저는 줄곧 같은 조정의 동료였을 뿐입니다. 언제부터 그런 번뇌 같은 연정이 있었단 말입니까.” 소세예가 웃으며 말했다.

초명윤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말씀은, 내가 예전부터 당신께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초 대인께서 과하게 짐작하신 겁니다.” 소세예는 억지로 손을 빼냈다.

“지금 당신이 나를 믿지 않아도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훗날 반드시 당신께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세예, 내 마음은 거짓이 아닙니다.” 초명윤은 손을 소매 속에 숨긴 채 스스로를 꼬집으며, 깊은 정을 담아 말했다.

소세예의 미소가 문득 짙어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병이 있으십니까?”

“상사병입니다.” 초명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실례했습니다.” 소세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떠났다.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초명윤은 깊은 눈길로 그를 배웅하다가, 상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표정을 거두고 입가에 옅은 웃음을 걸었다. 그는 여러 관료들의 복잡한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며, 방금 전의 말을 속으로 되짚어 보았다. 연기가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효과는 꽤 분명했다는 생각에,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날 초 대인이 궁문을 나서는 발걸음에는 한층 경쾌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

여름날은 한가로웠다. 소부(苏府) 문을 지키던 시위는 고개를 들어 밝은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가늘게 뜬 채, 한껏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모처럼 여유를 즐기고 있던 순간, 귓가에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장 창을 가로세워 저택 안으로 뛰어들려는 사람을 막아 세우며 날카롭게 물었다. “누구냐?”

달려오던 이는 간신히 걸음을 멈춰 부딪히는 것을 피했고,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짚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단정한 소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소백(苏白)은 이마의 땀을 한 번 훔치며 말했다. “접니다!”

그제야 상대가 공자의 곁을 지키는 시종임을 알아본 호위병은 급히 무기를 거두고 사과한 뒤, 참지 못하고 웃으며 놀렸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서 그래? 소공자라도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헛소리 마세요.” 소백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큰일이 났습니다. 공자는 어디 계십니까?”

“방금 서재 쪽으로 가시는 걸 봤어. 아직 계실 거다.”

소백은 곧장 서재로 내달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문을 밀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공자! 큰일입니다!”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공자 곁에 서 있는 중년 남자를 보는 순간, 소백은 다리에 힘이 풀려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관가(管家) 소의(苏毅)는 몸을 돌려 소세예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소세예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소의는 그제야 소백 앞으로 다가와 미간을 찌푸린 채 낮게 꾸짖었다. “예의도 모르고, 이렇게 덜렁대서야 어디 쓰겠느냐.”

소백은 풀이 죽어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 “아버지……”

소세예가 자리에 있는 터라, 소의도 더는 말하지 못하고 그를 한 번 노려보는 것으로 경고를 대신한 채 자리를 떠났다.

소세예는 서안 뒤에 서서 가볍게 웃었다.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왔으니, 또 혼나겠구나?”

그제야 소백은 고개를 들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머쓱하게 말했다. “그래도 공자가 제일 좋아요.”

그는 앞으로 다가가 소세예의 손에 들린 한 장의 초청장을 보고 물었다. “이건 뭔가요?”

“이번 과거의 장원 송형(宋衡)이 보낸 초청장이야. 며칠 뒤에 축하 연회를 열 거래.” 소세예는 초청장을 옆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전시 때 보니 문장이 유려하고 기개도 바르더라. 사귀어 둘 만한 인물이야.”

“오.” 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하려던 말은 뭐니? 무슨 큰일이 났다더니.” 소세예가 물었다.

“아!” 소백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 “밖에서는 이미 초 태위가 공자를 연모한다는 말이 파다합니다!”

소세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문일 뿐이야.”

“하, 하지만 찻집마다 다 퍼졌습니다! 초 대인께서 요즘은 공자의 취향을 알아내는 데 여념이 없으시고, 공자께서 예전에 다녀가신 곳까지 죄다 캐고 다닌다더군요. 게다가 저택에 있던 미인들까지 전부 내보냈다는데요……” 소백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소인은……가짜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그 사람, 서로 거의 교류도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나를 연모한대. 너라면 믿을 수 있니?” 소세예가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소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소세예의 시선을 마주치자 흠칫하며 다시 저었다.

“유언비어는 놔두는 게 나아. 괜히 해명하면 오히려 숨기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저절로 가라앉게 두자.”

“안 됩니다, 공자!” 소백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러다간 앞으로 혼사 치르기도 어려워집니다! 공자께서는 아직 혼인도 하지 않으셨는데 이런 소문까지 나면, 남들이야 공자를 어떻게 오해할지는 몰라도……초 태위 쪽이 이렇게 나서는 판에, 앞으로 어느 집 규수가 감히 공자께 시집오겠습니까!”

“……생각이 참 멀리까지 닿는구나.” 소세예는 한숨처럼 웃으며, 불이라도 난 듯 안절부절못하는 소백을 보고는 난처한 기색으로 소매 속 옥패를 꺼내려 했다. “그럼 네가 가서……”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그 사람들이 어디까지 떠들고 있는지 모르십니다!” 소백은 다급히 말을 끊었다. 얼굴을 붉힌 채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마침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공자께서는 늘 늠름하고 정기가 넘치는 분이시니, 초명윤은 침상에서……아마도 깔리는 쪽일 거라고들 하더군요.”

“……” 소세예는 손을 거두고, 서두르지 않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아.” 하고 짧게 응했다. 이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칭찬하는 말 아닌가? 한가한 자들의 잡담일 뿐이니, 신경 쓸 필요 없지.”

소백의 얼굴에는 놀람과 복잡한 기색이 차례로 스쳤다가, 이내 깨달은 듯한 존경으로 바뀌었다. “공자, 과연 기개가 남다르십니다!”

“그 이야기는 됐다.” 소세예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데려오라 했던 사람은?”

“만났습니다. 뒤따라 온다 하였으니, 지금쯤이면 이미 도착했을 겁니다.”



  1. 显赫; 현혁. 위세나 명망, 지위가 눈에 띄게 큰 상태를 뜻한다. [본문으로]

'如似我闻 > 君有疾否'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장.  (0) 2026.01.13
4장.  (0) 2026.01.09
3장.  (0) 2026.01.09
1장.  (0) 2025.06.12
군유질부 君有疾否  (0)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