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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동강묘채 硐江苗寨

* 硐江苗寨; 동강묘채. 동강 묘족 마을. 습기가 가득한 산속 동굴은 차갑고 음침했다. 오직 입구 쪽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만이 이 공간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사방에는 무수한 벌레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은 조용히, 불쾌한 갉아먹는 소리를 냈다. 나는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바람막이를 끌어당겨 그 속에 몸을 웅크렸다. 오른발의 통증은 쉬지 않고 이어졌고, 자력으로 벗어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 바랄 수 있는 건, 동료들이 하루빨리 길을 찾아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기도, 한편으로는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동굴 바닥은 눅눅했고, 그대로 누워있기엔 거칠고 차가웠다.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지도 오래였고, 기운은 거의 ..

카테고리 없음 2025.07.08

정고 情蛊

벌레가 갉아먹는 듯한 수많은 밤들 속에서, 나는 뒤척이며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결국 한 가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마 션젠칭(沈见青)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 무심하고 준수한 묘족(苗族) 소년을. ——— 불행은 자차로 떠난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북적이는 묘채의 인파 속에서, 나는 감청색 장포 자락이 스치듯 사라지는 것을 힐끗 보았다. 그게 내가 션젠칭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음산한 소년은 마치 구석에 똬리를 틀고 도사린 독사 같았고, 탐욕스러운 눈빛은 나를 오싹하게 했다. 그때 나는 아직 몰랐다. 내가 이 묘역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못하리란 것을. ——— 내 인생에서, 나는 세 번 션젠칭의 고종(蛊盅)을 보았다. 처음은 조각다리 위 가옥의 창 아래서였다. 나는 고종을 가리키며 웃는 낯으..

카테고리 없음 2025.07.05

13장.

그 해는 선명 37년이었다. 이때부터, 고대 제국은 비로소 세계의 전모를 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모습에 계단 쪽으로 사라지자, 후근 업무 건물 지하 1층은 다시 고요해졌다. 창고 관리인은 손에 든 명품 담배를 몇 번이고 매만졌다. 다시 그것을 코끝에 가져가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만족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한 개비의 값만 해도, 그의 월급 반을 넘었다. 관리인은 지체 없이 당직실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문 채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러자 만족스러운 콧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는 몸을 깊숙이 등받이에 기댄 채, 담배를 한 모금 또 한 모금 피워 끝까지 태웠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뼈마디까지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을 ..

풍중적야장미 风中的野蔷薇

*바람 속의 들장미. 서양 판타지 단편, 음유시인 x 마법사. 인파가 겹겹이 뒤엉킨 가운데, 연회복과 화려한 치맛자락, 보석 장신구와 황금 술잔이 교차하는 틈 사이로, 마법사는 마침내 잠시, 그 연주 중인 음유시인을 스치듯 보았다. 그녀는 호숫처럼 맑은 녹안을 지니고 있었다. 그 한 점의 옅은 녹색을, 마법사는 평생 기억했다. 내용 태그: 특별히 깊은 애정, 의도치 않은 우연, 서양 판타지, 기억 상실 한 마디 소개: 서양 판타지, 음유시인 x 마법사 입의: 진정한 사랑은 영원하다. ——— w. 은한산(殷寒山) 1. 시인은 한 차례 창작 의뢰를 받았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음유시인 중 한 명이기에. 교황청이 세력을 키워가던 시절, 그녀는 전쟁으로 불타버린 ..

半杯茶/短文 2025.06.12

12장.

그의 사춘기는, 아직도 오지 않은 것만 같았다. 점심시간 무렵, 자오징윈은 교직원 사무동에 들어섰고, 문패 번호를 따라가 량옌의 사무실을 찾아냈다. 옌난공학의 교사들은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씩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으며, 그 안에는 따로 마련된 작은 휴게실도 딸려 있다. 이 시각, 정오의 햇살은 뜨겁고, 매미 소리도 한풀 꺾여 있었으며, 교정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랑옌도 역시 분명 방 안에 있을 터였다. 다만 아직 쉬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자오징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선생님, 저는 3반 학생입니다.” 곧이어 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방문이 열렸다. 량옌은 자오징윈을 보고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11장.

“새로 오신 역사 선생님이야. 이름은 량옌(梁彦)이라더라.” 여름 햇살은 늘 뜨거웠다. 아직 아침인데도 창문으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오징윈이 눈을 떴다. 창문 커튼이 걷히지 않아 살랑였고, 그 색과 무늬가 낯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니, 낯설면서도 깔끔하게 정돈된 가구들이 있었다. 그제야 여기가 여관임을 깨달았다. 유일한 짐은 소파 위에 놓인 짙은 갈색 가죽 서류 가방이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어젯밤, 아버지 자오청쥔이 서대륙에서 돌아왔고, 두 사람은 크게 다투며 불편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자오징윈은 자오청쥔과 한 지붕 아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곧장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집사와 하인이 막았지만,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집을 나섰다. 그는 깊은 밤거리에서 특별..

10장.

“이전에는 배멀미를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복도에는 고함과 비명이 뒤섞여 울려 퍼졌고, 승객들은 객실에서 우르르 뛰쳐나와 문 앞을 지나며 혼란스레 엇갈렸다. 선체는 여전히 거센 파도에 휘말려 이리저리 뒤흔들렸다. “집합 지점으로 가!” 스추는 벽을 짚은 채 망설임 없이 지시를 내렸다. 다른 이들도 서둘러 반응해 차례로 방을 빠져나왔다. 훠웨이닝은 카펫 위를 힘겹게 기어가며 손을 뻗어 황동 상자를 붙잡고, 주머니 속에 단단히 쑤셔넣었다. “정신 나갔어요? 빨리 안 뛰고 뭐해요! 그 상자가 당신보다 훨씬 튼튼하다고요!” 양샤오산이 그를 와락 끌어올려 부축하며 흔들리는 복도로 함께 달려나갔다. 모든 승객이 복도에서 집합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서로를 밀치고 부딪히는 가운데, 갑자..

9장.

“배에 오른 첫날,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연회가 끝나자, 귀빈칸 사람들은 취기를 안고 각자 객실로 돌아갔다. 자오징윈은 객실 안에서 복도가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문을 열었다. 맞은편 꽉 닫힌 문을 한 번 바라본 그는, 소리 없이 양샤오산의 객실로 향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한 자오징윈은 손을 뻗어 조용히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팡위, 린나, 양샤오산 세 사람은 각각 소파 한쪽을 차지한 채, 특별한 주제 없이 느슨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모두 일제히 허리를 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때, 작전은 잘 마쳤어?” 자오징윈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그럼요, 문제 없이 잘 마쳤습니다.” 훠웨이닝이 술에 젖은 옷을 입고 객실로 돌아가면, 반드..

8장.

“군사정보국의 문턱이 이렇게 낮아진 겁니까?” 귀빈칸 연회는 늘 그렇듯 석식 이후에 열렸다. 연회장은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대형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부드러운 빛을 쏟아내고, 벽 곳곳마다 촛대를 든 인어 조각상이 놓여 은은한 광채를 더했다. 악단은 지칠 줄 모르고 연주를 이어갔으며, 승객들은 값비싼 구두를 신고 정교하게 짜인 원목 바닥 위를 음악에 맞춰 유려하게 미끄러졌다. “어떠세요, 객실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즐겁지 않으신가요?” 린나는 환하게 웃으며, 정중히 초대한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렇네요.” 스추는 예의 바르게 답하고는 연회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조용히 그러나 면밀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위 도련님께서 눈에 들어오는 아가씨..

7장.

“혹시 ‘밀림’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다음 날 아침, 자오징윈이 식당에 들어서자 세 명의 직원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팡위가 손짓으로 그를 불렀고, 자오징윈이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오늘은 안색이 조금 안 좋으신데요.” “괜찮아, 어젯밤에 잠을 설쳤어.” 자오징윈이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어제는 그렇게 활기차시더니. 도련님, 혹시 배 안 침대가 불편하신가 봐요?” 린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자오징윈은 고개를 저으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양샤오산이 거의 식사를 마친 것을 본 그는 궁금한 듯 물었다. “샤오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일찍 잠들었으니 일찍 일어나는 게 당연하죠.” 팡위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