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 4

11장.

“이렇게 하지, 약속을 세 가지 할까?”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날 밤 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마치 한 밤의 좋은 꿈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의장. 위민은 너그러이 사방이 탁 트인 물가의 정자 하나를 영당으로 꾸미고, 상복과 흰 촛불로 가득 채웠다. 정거한의 시신은 그 안에 안치되었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명검 대회에 변고가 생기자 실망해 떠난 이들도 있었고, 잃어버린 ‘불의검’에만 마음을 두고 정거한의 무능을 은근히 탓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정거한의 유일한 혈육은 멀지 않은 건물에 연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월은, 설령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그를 만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산파는 여전히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

10장.

……작은 녀석, 생각보다 꽤 세심한 걸.이 한 마디는 마치 평지에 울려 퍼진 천둥 같아, 현장에 있던 이들의 가슴에 가득한 의혹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허탈한 빗물처럼 쏟아지게 했다. 강리는 고개를 들어 위가의 날 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으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위가 또한 피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조월 낭자에게 묻습니다. 어젯밤, 그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저는……” 조월은 강리를 한 번, 위가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는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위가는 말을 이었다. “저는 어제 무대에서 내려온 뒤, 심히 부끄럽고 마음이 편치 않아, 실례를 사과하러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겨우 시간이..

9장.

“나와 그는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5월 14일, 명검 대회가 밝았다. 내려쬐는 뙤약볕은 여름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그야말로 환하며 강렬하다. 척조석이 연무장에 발을 들여놓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초조한 낯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보고 크게 실망하더니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설락은 과연 더는 척조석을 부르지 않았다. 그 자신도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으나 관망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척조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의 옆에는 뜻밖에도 강리와 조월이 서있었다. 이곳 연무장은 어제 펼쳐진 신예 시합 때보다 매우 활기가 넘쳤다. 결국 불의검과 관계된 일이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높은 무대 위에 더 이상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무대 아래는 사..

8장

우리가……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해질 무렵, 강리는 이미 더듬거리며 침상에서 내려왔고, 누운 흔적이 남지 않게 정돈했다. 척조석은 뜰에 없었다. 그는 물을 뿌려 바닥을 쓸던 가복에게 간단히 설명한 후, 자신이 머무는 서원의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누워서 휴양하는 대신, 서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서안 앞에 앉아 뒤적였다. 아직 두 장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조월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고, 뒤이어 멍해졌다. “강리? 나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조월! 내 말을 좀 들어보렴……” 강리는 정거한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 조월은 뒤돌아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고, 등으로 눌러 버티며 악담을 퍼부었다. “무슨 말? 당신한테 말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