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막 밝을 무렵, 산림 사이에 엷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사운천(谢云川)이 한 차례 검법을 수련하고 나서야 안개가 걷혔다. 그는 아래로 펼쳐진 산천과 운해를 굽어보았다. 아근(阿谨)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곁에 시립해 있던 동목(桐木)이 때맞춰 따뜻한 차를 올렸다.
사운천은 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이며 물었다. “조여의(赵如意)는 어떻지?”
“우호법은……”
동목이 그 몇 글자를 뱉자, 사운천의 시선이 그를 스쳤다.
극히 가벼운 눈길이었지만, 동목은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며칠 전 교주가 화를 냈을 때, 우호법을 ‘하찮은 검 노예’라 부른 일이 떠올랐다. 그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 말이 우호법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토막 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고쳤다. “그 사람은 입이 매우 무겁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형을 집행했으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운천은 가볍게 응했다. 속하들의 속내를 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조여의는 비록 실각했으나, 재기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로서도 굳이 원한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잠시 서 있다가 말했다. “지하 감옥으로 간다.”
지하 감옥은 산세를 따라 지은 것이다. 산기슭을 파 동굴 하나를 냈고, 그 입구가 곧 출입구였다. 바깥에는 두 사람이 지키고 서 있었는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서서 사운천을 제대로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공손히 말했다. “교주를 뵙습니다.”
사운천은 손을 한 번 저으며 곧장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몹시 축축했다. 이따금 물방울이 떨어져 차갑게 옷깃 안으로 스며들었다. 반 잔의 차를 마실 만큼의 시간을 걷자, 시야가 트이며 마침내 감옥에 이르렀다. 감방은 열여 개 남짓이었다. 복도 옆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칠 뿐, 전반은 고요했다. 오직 가장 끝의 한 방에서만, 미약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사운천이 한 걸음씩 다가가자 소리는 점차 또렷해졌다. 채찍이 사람의 몸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채찍은 소금물로 적셔진 것이었고, 형을 집행하는 자의 손놀림 또한 노련해 휘두르는 족족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쳤다. 그런데도 형을 받는 이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사운천은 감방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에 갇힌 조여의를 바라보았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두 손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옷깃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얼굴은 눈처럼 희었는데, 관자놀이 위의 해묵은 흉터 하나가 타오르는 복사꽃처럼 검은 머리칼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운천은 그 흉터를 한 번 훑어본 뒤, 감방 문을 발로 차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교주……” 형을 집행하던 두 간수가 그를 보자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났다.
사운천은 아무렇지 않게 채찍을 받아 들며 말했다. “너희는 나가 있어라.”
감방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닫히고, 곧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 고요 속에서 조여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곧장 사운천을 향했다. 옅은 입술이 미미하게 휘어지며 다소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하……교주를 뵙습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스스로를 ‘속하’라고 칭하다니.
사운천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채찍 자루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시선을 조여의의 몸에 두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우호법이 꽤 크게 다친 모양이야.”
“살갗이 조금 상했을 뿐입니다. 교주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조여의는 짧게 기침을 몇 번 하고 덧붙였다.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음. 농을 늘어놓을 기운은 남아 있나 보군. 그렇다면 내 물음에도 답할 수 있겠지.”
“교주께서는 무엇을 묻고자 하십니까? 아는 한,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속하의 식견이 얕아……”
사운천은 더는 빙빙 돌 생각이 없었기에, 대놓고 물었다. “조근(赵谨)은 어디로 갔지?”
그 이름이 나오자, 조여의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는 사운천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알지 못합니다.”
“모른다? 네 도움이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산 아래의 대진을 뚫고 지나갈 수 있었지? 이십 리를 나아간 뒤 수레를 버리고 배로 갈아탄 것, 그것이 네 안배가 아니라고?”
“속하는 교주의 명을 받아 기주(冀州)로 가 분당(分堂)의 일을 처리했고, 그제서야 복귀했습니다.” 조여의는 담담히 말했다. “교중에 돌아와 복명하자마자 포위되었는데, 소야(少爷)의 소식을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의 말은 결백하게 들렸지만, 사운천의 귀에는 어딘가 조롱처럼 들렸다.
그랬다. 그날 그는 일부러 산기슭에 여러 고수를 보내 조여의를 매복해 포위했다. 포위는 했지만 끝내 제압하지는 못했고, 결국 그가 직접 나서고서야 손을 들었다. 일전의 말은 자신을 비웃는 것인가? 수하에 쓸만한 자가 없다는 뜻인가?
사운천은 속이 답답했으나, 끝내 참고 물었다. “너는……조근이 왜 떠났는지 알고 있나? 모르지는 않겠지.”
중추철 그날 밤, 술에 취해 내뱉었던 그 말 때문이었을까?
“소야의 일은……” 조여의가 말했다. “속하가 어찌 감히 관여하겠습니까?”
“이런 큰일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니. 그를 그렇게 챙기던 네가?”
“속하는 자연히 걱정합니다.”
“조근은 천현교(天玄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강호의 험악함은 전혀 모르지. 더구나 강호의 정파 인사들은 줄곧 우리 천현교를 적으로 여겨 왔다. 너는, 홀로 나선 그가 밖에서 위험을 겪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나?”
“교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조여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각 말을 이었다. “교주께서 믿어주신다면, 속하를 보내주십시오. 소야를 찾겠습니다. 설령 배로 달아났다고 해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니, 속하의 추적 솜씨라면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쯤이면 그에게 어째서 천현교를 떠났냐며 직접 물어볼 수 있겠지요. 교주께서 소야를 그토록 아끼셨으니, 사사건건 옭아매지는 않으셨을 터……그런데도, 그는 왜 홀로 떠난 것일까요?”
허.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았으나, 그 속엔 은근한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조근의 소식을 얻어야 했기에, 사운천은 노기를 누르고 몇 걸음 다가섰다. 그는 조여의의 어깨 위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귓가에 대고 말했다. “우호법. 너 역시 칼산과 피바다를 넘어 이 자리에 올라왔다. 그 고됨을 모르지 않을 텐데. 정말로 스스로 앞길을 끊을 셈인가?”
“과분한 말씀입니다.” 조여의는 여전히 공손하며 온화한 태도로 답했다. “속하는 줄곧 맡은 바를 다해, 교주의 근심을 덜어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무슨 근심을 덜겠다는 건가? 정작 그의 마음에 든 사람은 내쫓지 않았나.
미간을 좁힌 사운천이, 마침내 그의 이름을 한 자씩 뱉었다. “조, 여, 의!”
마지막 음절에 이르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쇠사슬이 ‘잘그락’ 울리고, 조여의의 얼굴빛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애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얌전히 떨궜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눈동자를 가렸다. 그 모습은 오래 전, 사운천이 처음 그를 보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누가 알았으랴.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허약하기 그지없던 소년이, 이처럼 깊은 야심을 품고 나아가 한 걸음씩 호법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조근이 그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진작 황무지에 내던져졌을 몸이었다.
사운천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네 신분을 잊지 마라!”
그가 조근과 함께 무예를 익혔을 당시, 조여의는 단지 한 명의 검 시중 노예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미천한 출신이라면 과거를 들추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허나 조여의는 달랐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주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교주께서 베푸신 은혜는, 설사 분골쇄신한다 해도 결코 다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채찍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앞서 형을 집행하던 자는 조여의가 우호법이라는 이유로 얼굴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사운천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이 한 번의 채찍질로,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선명한 핏자국이 그어졌다.
선혈이 선처럼 흘러내렸다.
조여의는 고개를 들었다. 피가 흐르는 얼굴 위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사운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주, 이 한 대는 빗나갔습니다. 조금 더 위, 이마 옆을 치셨더라면……그게 훨씬 더 아팠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