试读

2장.

유유𓅨🦋 2026. 1. 29. 02:57

침상엔 휘장이 빈틈없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틈새로 드러난 눈처럼 하얀 팔에는 군데군데 채찍 자국이 선명했다. 유난히 가는 손목은 뼈가 도드라져, 먹색 소매가 도리어 넉넉해 보일 지경이었다.

양 대부는 손가락을 살짝 그 손목에 얹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이따금 낮게 중얼거렸다. “난처하군. 난처해.”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

양 대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자신을 ‘모셔 온’ 이 공자를 바라보았다. 용모는 수려했으나 얼굴에 서린 냉기가 심상치 않아 차마 눈길을 오래 두지 못했다. 그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환자 몸의 채찍 상처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내상이 깊고 기혈 손상이 심합니다.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누가 그의 상처를 고쳐 달라 했나?” 사운천은 탁자 곁에 앉아 차를 따르며 말했다. “내가 묻는 건, 이 몸에……언제 다시 형을 가할 수 있느냐다.”

“형이라니요?” 양 대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이 상처만 해도 이미 다루기 어려운데, 다시 형을 가한다면 신의가 와도 손을 쓸 도리가 없을 겁니다.”

사운천은 더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치료는 가능한가?”

양 대부가 말했다. “소인의 의술이 미천하여……”

사운천은 손을 들어 동목을 향해 한 번 가볍게 내저었다.

동목은 곧장 양 대부를 밖으로 모셔 나갔다.

다만 양 대부도 의원인지라, 차마 그대로 떠나지는 못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할 탕약 처방 한 장을 남겼다. 동목은 그 처방을 들고 다시 들어와 사운천에게 보고했다.

사운천은 처방을 훑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인삼이며 설련 같은 귀한 약재뿐이었다. 자신의 은자를 들여 원수의 목숨을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다. 조여의가 죽어버리면, 어디 가서 조근의 행방을 캐겠는가. 그는 마지못해 말했다. “약은 짓도록.”

동목은 교주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밖에서 데려온 의원이라 실력이 미덥지 못한 듯합니다. 의술로만 따진다면, 교중의 진 당주가 가장 낫지 않겠습니까……”

“진풍(秦风)이 알게 되면, 이 일을 계속 숨길 수나 있을까.” 사운천이 말했다. “교주와 우호법 사이가 틀어졌고, 우호법은 지하 감옥에 갇혀 중형까지 받았다. 이런 일을 천현교 전체에 떠벌리기라도 하란 말이냐?”

동목은 속으로만 깊이 한숨을 삼켰다.

교주 역시 이 일이 옳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어찌 이토록 큰일을 벌여 버린 것인지. 지금 우호법은 병상에 누워 있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운천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조근의 일만이 맴돌고 있었다. 조여의는 끝내 한 마디의 진실도 내놓지 않았다. 정말로 조근의 행방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평소 조근을 눈알처럼 끼고 돌던 사람이다. 자신이 한 번 더 시선을 주어도, 어김없이 앞으로 나서 막아섰다. 그런 그가 조근을 홀로 강호에 내던져 두었을 리가 없었다.

이 일이 설령 조여의의 계책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뒤에서 부추겼음은 분명했다.

사운천은 문득 자신이 술에 취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마침 그날은 조여의가 교중에 없어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그 덕에 술을 평소보다 과하게 마셨다. 조근과 단둘이 있었던 탓에, 행동 역시 다소 분수를 넘긴 면이 있었다. 이튿날 술이 깨고 나서는, 혹여 조근을 놀라게 했을까 염려되어 며칠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이, 조근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 서신 한 통조차 없이.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조근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운천은 방 안을 몇 차례 오락가락하다가, 마침내 침상 앞으로 다가가 늘어뜨린 휘장을 걷어 올렸다.

조여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가셨고, 입술빛도 전보다 한층 옅었다. 관자놀이의 해묵은 흉터는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에 대부분 가려졌으며, 그 사이로 어둡게 변한 붉은 자국만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아래에는 어제 새로 더해진 채찍 자국이 있었다.

사운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는 제때 약을 썼으니, 흉터까지 남지는 않을 것이다.

문득 지하 감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조여의는 여전히 입을 놀리며, 다음 채찍은 해묵은 흉터 위로 내리치라 떠들어댔다. 그런데 막상 채찍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히려 그가 먼저 기절해 버리지 않았던가. 허. 조여의는 잔꾀로 똘똘 뭉친 자다. 저것이 진짜로 기절한 건지, 아니면 또 한 번 꾸며낸 연기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버티는데, 대체 무슨 수를 써야 저 입을 열 수 있단 말인가. 형벌을 한 차례 써보았으나, 지금으로선 더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약을 쓰는 수밖에 없나?

그의 생각이 막 ‘약’ 자에 미치자, 검고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조여의는 언제 깨어났는지, 눈에는 아직 멍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사운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주.”

사운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여의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더듬었다. 관자놀이의 해묵은 흉터에 닿자 잠시 손을 멈추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주.”

사운천은 일순 멍해져 물었다. “이 꼴이 되었는데, 무엇이 감사하다는 거지?”

조여의가 말했다. “손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형을 견디지 못해 기절했을 뿐이었다. 어디에 자비가 있었단 말인가.

사운천은 조여의만큼 낯두꺼운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이 말은 흘려들었다. “조근이 떠난 지 며칠이 되었는지 아나?”

“속하는 들어오자마자 지하 감옥에 갇혀, 소야의 행방은······전혀 모릅니다.”

“꼬박 이레, 그동안 어떤 소식도 들려오질 않았지.”

“사람을 보내 쫓지는 않으셨습니까?”

“이미 영월(影月)에게 맡겼다.”

“영 당주가 직접 나섰다고요?” 조여의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소야의 무공은……음, 평범한 편이지요. 행적을 숨기는 재주도 없습니다. 영 당주가 나섰다면, 진작 소식이 들려왔어야 할 텐데요.”

“그래야겠지.” 사운천은 조여의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누군가 그를 뒤에서 돕지 않았다면.”

조여의는 픽 웃더니, 침상에 기대 몸을 일으켰다. 넉넉한 옷자락 사이로 여러 개의 채찍 자국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말씀은 많으셔도, 결국 교주께서는 여전히 저를 의심하신다는 거군요.”

사운천은 숨김없이 답했다. “너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니까.”

“좋습니다. 제가 가장 의심스럽다 치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했다 한들, 이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여의가 되물었다. “소야는 천현교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뭐 하러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 그를 끌어내 강호의 칼바람 속으로 내몰겠습니까?”

그의 이 한 마디는 정확히 사운천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사운천은 조여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조여의가 그 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하다가, 말끝을 고르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름쯤 전, 중추절 밤이었다. 진풍이 직접 빚은 술 한 단지를 내게 가져왔고……”

조여의가 자연스레 말을 받았다. “진 당주가 빚은 술이라면, 분명 좋은 술이었겠군요. 소야도 술을 좋아하시고요.”

“그래. 그날은 달빛도 좋았지.” 사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술상을 차려 조근을 불러 함께 마셨다. 이화백주였는데, 몇 잔 들이키고 나니 제법 취기가 올랐다.”

조여의가 웃음을 터뜨렸다. “교주의 주량이야, 소야보다도 못하시잖습니까.”

사운천이 그를 흘겨보았다. 더 들을 생각이 있긴 한 거냐는 눈빛이었다. 조여의는 그제야 자세를 바로 하고, 공손히 손짓했다. “계속 말씀하시죠.”

“조근이 내가 취한 걸 보고 방으로 부축하려 했다. 그때, 내가 그의 팔을 붙잡고……” 사운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이어 말했다. “몇 마디를 했다. 그가 조금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어.”

그가 끝내 말을 흐린 탓에, 겉으로는 모를 수도 있었지만 조여의 같은 사람에게는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조여의조차,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그가 짧게 뱉었다. “아.”

“그래서 저를 기주로 보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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