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似我闻/君有疾否

7장.

유유𓅨🦋 2026. 1. 29. 20:58
“소 대인, 단수하셨군요.”



초명윤은 팔을 풀어 소세예를 놓아주고 곧장 화살을 뽑아 옆으로 던졌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가셔 창백했지만, 찌푸린 미간을 제외하면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다. 어깨에서 번져 나오는 검붉은 피를 한 번 훑어본 그는 담담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독을 없는 듯하니.” 그는 두 손가락으로 혈도를 눌러 지혈한 뒤, 길게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역시 말은 함부로 뱉는 게 아니었네요. 버틸 수 있다 장담해 놓고, 결국 내 몸으로 당신 앞을 막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도 기관이 있는 걸 보니, 길은 맞았나 봅니다.” 초명윤은 바닥에 꽂힌 화살들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소세예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소세예는 이미 기관에서 시선을 거두고, 내려앉은 석판 위에 다시 올라서며 기름등잔에 손을 뻗고 있었다. 초명윤은 재빨리 그의 손을 붙잡아 끌어내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또 만지려는 겁니까?”

소세예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한번 바라본 뒤, 조용히 손을 빼냈다. 잠시 망설이다가, 초명윤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어깨의 상처를 피해 몸을 기울여 그를 감싸듯 서고, 다치지 않은 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초명윤은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아주겠다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방법이 있다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 사이 소세예는 청동 등잔을 움켜쥐었다. 힘을 주자 등잔이 천천히 돌아가며 둔탁한 기계음이 울렸고, 곧 석벽 양쪽의 장치가 닫히며 전방 한쪽에 또 다른 좁은 길이 드러났다.

소세예는 그제야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어깨의 상처는 어떻습니까?”

초명윤은 차갑게 웃었다. “죽진 않습니다.”

소세예는 더 묻지 않고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초 대인께서 보시기엔, 어느 쪽으로 가야 하겠습니까?”

초명윤은 앞으로 나아가 바닥에 박힌 화살 하나를 뽑았다. 화살촉을 살피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소세예는 한숨을 쉬며 힘이 빠진 듯 웃었다. “초 대인……”

그 순간, 초명윤은 불현듯 몸을 돌려 화살을 던졌다. 화살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모퉁이의 석벽에 깊게 박혔다. “물어보면 알게 될 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둠이 깔린 모퉁이를 향해 낮게 말했다. “나와.”

모퉁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거의 잔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초명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다가, 상대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손을 들어 단숨에 기세를 꺾었다. 이어 목을 움켜쥐어 그대로 벽에 눌러붙였다.

소세예는 처음엔 태연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초명윤이 손을 쓰는 순간,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이미 얼굴에는 늘 짓던 옅은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붙잡힌 이는 아까의 순위병 중 하나였다. 독으로 인해 낯빛이 푸르게 질려 있었는데, 목이 졸려 숨이 막히자 얼굴에는 다시 핏기가 더해졌다. 얼핏 보면 섬뜩해 보였다. 무공은 중상 정도였고, 깊게 중독된 것은 아닌 듯했다. 화살비가 쏟아지는 혼란을 틈타 살아남아, 그들 뒤로 숨어든 모양이었다.

“길을 아나?” 초명윤이 물었다.

순위병은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쯧.” 초명윤은 손에 힘을 더 주며 서늘하게 웃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 그럼 나도 더는 예의 차리지 않으마.”

“초 대인.” 소세예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음?” 초명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말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초명윤은 피식 웃으며 손을 풀었다. 순위병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해보십시오.”

순위병은 목을 부여잡고 기침하며, 눈앞의 흰 옷을 입은 남자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소세예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목숨이 아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도망쳐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모두 살아 나가고 싶은 건 매한가지일 테죠. 거래를 하나 합시다. 당신은 우리를 밖으로 안내한다면, 우리는 당신의 목숨을 남겨주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순위병은 이 온화한 낯을 한 사람이 바로 독을 쓴 장본인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을 어찌 믿습니까?”

소세예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매에서 청색 자기 병 하나를 꺼냈다. “길을 안내하는 건 당신의 몫이니, 당신이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먼저 당신에게 믿음을 주겠습니다.” 그는 자기를 순위의 손에 쥐여주었다. 손끝은 따스했다. “챙겨두세요.”

순위병은 자기 병을 쥔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초명윤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소세예가 돌아와 말했다. “가실까요.” 그리고는 그를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

초명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 “나를 부축해 나가시려고요?” 그는 소세예를 보며 덧붙였다. “그보다는 차라리 저를 안고 가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소세예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정말로 팔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기울였다. 초명윤은 급히 그의 손을 붙잡고 웃었다. 여태 마음속에 서려있던 약간의 불길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당신을 놀렸습니다. 그렇게까지 허약하진 않습니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소세예는 그의 얼굴빛을 살폈지만, 겉으로는 큰 이상을 느끼기 어려웠다.

초명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두 남자의 대화를 복잡한 얼굴로 지켜보던 순위병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소세예는 여전히 한 발짝 뒤에서 그를 지켜보았는데, 초명윤이 한참을 걸어도 크게 별 탈 없어 보이자 그제야 마음을 놓고 뒤따랐다.

순위병은 그들을 원래의 길로 인도했다. 초명윤이 불쑥, 갑자기 나타났던 그 좁은 통로의 용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순위병은 앞만 보고 묵묵히 걸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방향을 틀며 한참을 걸은 끝에, 순위병은 그들을 막다른 석실로 데려왔다. 주위에는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초명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기관인가?”

순위병은 그를 한 번 보고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예.” 그는 초명윤과 소세예의 뒤로 물러나, 석벽을 더듬어가며 한참을 찾았고 마침내 구리 고리 하나를 끌어당겼다. 다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는, 하필 소세예의 웃음 어린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고 힘껏 고리를 비틀더니, 곧장 몸을 돌려 왔던 길로 전력질주했다.

저 흰 옷을 입은 남자가 아무리 믿을 만하다 해도, 그 곁의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지닌 무공과 살기는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개미 한 마리 같은 존재일 뿐, 목숨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등 뒤에서 구리 고리가 폭발하듯 울렸다. 그는 뒤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미친 듯이 달렸다.

둔탁한 굉음이 울리며, 석실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초명윤은 곧바로 장력을 날려 문을 쳤다. 그러나 두터운 석문에 부딪힌 기운은 문을 심하게 떨리게 할 뿐, 수많은 돌가루만 후두둑 떨어뜨렸다.

“쯧.” 초명윤은 성가시다는 듯 손을 거두고 소세예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이 남자는 늘 그 미소 말고는 좀처럼 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떠올랐다. 그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으며 비아냥 섞인 웃음을 흘렸다. “소 대인께서도 눈이 흐려질 때가 다 있으시군요. 덕분에 저 인간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소세예는 석실 한가운데에 선 채 고개를 약간 들어 천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 말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여기 갇히면 최소 사흘은 굶어야 죽겠지만, 그는 길어야 차를 세 잔 마실 시간 안에 독으로 인해 죽게 될 겁니다.”

“건넨 것이 해독약 아니었습니까?” 초명윤이 물었다.

“제가 왜 해독약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합니까?” 소세예는 이상하다는 듯 그를 한 번 보더니, 입가의 웃음을 더욱 깊게 했다. “그저 남아 있던 독을 넘겼을 뿐입니다.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는 보증 정도로요. ……그가 괜히 꾀를 부리지만 않았다면 살 길은 있었을 겁니다.”

“그게 당신이 말한 소위 ‘신뢰’입니까?” 초명윤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제가 그것이 해독약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소세예는 옅게 웃으며 담담히 덧붙였다. “확실히 저는 남을 신뢰하는 데 능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직접 보고 들은 것이 훨씬 믿을만하지요.”

촛불이 드리운 그늘 속에서, 초명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과연, 세상이 칭송하는 온화하고 겸손한 소세예답군요.”

“과찬이십니다.” 소세예는 담담히 답하며, 다시 매끈한 석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장법을 내지를 때 상처가 다시 벌어진 듯, 어깨에 송곳이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초명윤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다시 어혈점을 봉해 간신히 출혈을 멎게 했다. 그리고 비웃듯 말했다. “여기서 정말 죽게 된다면, 아마 수십 년은 지나야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낼 수 있겠지요. 소 대인 같은 미인이 곁에 있으니 이것도 그리 손해는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뼈를 찾았을 때, 우리 둘을 합장해줄 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소세예는 석벽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표면을 짚으며 두드렸다. “초 대인 같은 분은 무덤 앞도 늘 찾아오는 사람으로 붐비겠지요. 소 모는 연루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황천에서 들어가서조차 평안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다 손이 멈췄다. 이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역시 이 석실은 위장이었군요. 벽조차 그 속이 비어 있습니다. 뒤쪽에 길이 나 있을 겁니다. 슬슬 일어나시죠. 이제 나가야겠어요.”

“조금만 더요. 아직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초명윤의 목소리가 다소 잠겨 있었다.

소세예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가와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제야 초명윤의 얼굴이 창백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창백함 때문에 본래의 화려한 이목구비가 더욱 또렷해 보였다.

소세예가 그의 겉옷을 풀려 하자, 초명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소 대인, 이건 기회를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건가요?”

소세예는 대꾸하지 않고 속옷 소매를 찢어 붕대를 만들며 말했다. “제가 쓰는 향은 모두 안신향이라, 통증을 누그러뜨릴 겁니다.”

“소 대인, 소매를 끊으셨군요.” 초명윤은 느긋하게 웃었다. “속옷까지 내어주셨으니, 우리는 살을 맞댄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 정절을 망치셨는데, 책임지시렵니까?”

소세예는 잠시 그를 올려다봤다가, 피에 젖은 옷자락으로 시선을 떨궜다. “계속 농을 치신다면, 제가 책임지기도 전에 쓰러질 텐데요.”

상처는 예상보다 깊었고, 거의 뼈에 닿아 있었다. 이 상태로 버텨 온 게 믿기 어려웠다. 잠시 침묵하던 소세예가 낮게 말했다. “당신이 저를 대신해 맞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초명윤은 석벽에 몸을 기대고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소세예가 가까이 다가오자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흔한 안신향과는 달랐다. 숨결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기운이 통증까지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그는 소세예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 그림자를 보며 입꼬리를 느리게 올렸다.

“얼마 전 마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온 경성이 다 아는데, 벌써 잊으신 겁니까?”

소세예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여긴 우리 둘뿐입니다. 더는 연기할 필요 없겠지요. 조정에서 여러 해 함께했지만, 평소엔 말 한마디 섞지 않았고, 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당신의 일을 막았던 것도 알고 계실 테고요. 그런 상황에서 정말 제게 마음을 품었다면…… 그건…….” 그는 옷깃을 더 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피와 살이 엉긴 탓에 아플 수 있습니다.”

“뭡니까?” 초명윤이 물었다.

“당신이 단단히 잘못됐다는 뜻이지요.”

초명윤이 낮게 웃었다. “상사병입니다.”

소세예는 그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웠다. “이를 꽉 무세요.”

“응?”

“쫘악” 하는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초명윤의 어깨에 선혈이 번졌다. 석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소세예가 붕대를 감고 옷매무새를 정리해 준 뒤, 초명윤이 어깨를 짚고 낮게 말했다. “……좀 더 부드럽게 하실 수는 없었습니까. ……이 정도로 앙심 품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소세예는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며 온화하게 웃었다.
“방금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못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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