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还/太傅他人人喊打

3장. 분주부본汾州副本 (3)

유유𓅨🦋 2025. 12. 17. 16:07

뭇사람들은 육 대인이 그를 끌어안고 앉는 것을 보자, 그제야 능청을 떨며 몸을 일으켰다. 각자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옆에 끼고 자리에 앉았고, 연회가 끝난 이후의 봄과도 같은 밤을 기다렸다.

소관(小倌)[각주:1]들은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하나씩 사람들에게 인계되었다. 연지만이 고집이 센 당나귀처럼 방 안에 우뚝 선 채, 육 대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좌관 중 지위가 가장 낮은 이는 이정이다. 마지막에야 차례가 돌아왔지만, 남은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연지를 향해 걸어갔다.

연지는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살기를 느낀 탓에 이정은 감히 손을 들어 그를 끌어안을 수 없었다. 입으로만 연지가 버릇없다고 타박하며, 결국 억지로 손을 뻗어 끌었다. 연지는 손을 들어 막고, 다른 손으로 이정을 밀쳐 자리 끝으로 밀어냈다.

다른 소관들이 사람 품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연지는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가볍게 무릎에 올린 자세가 유난히 정중했다.

이정은 연지 옆에 앉았다. 고개를 든 순간, 육 대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이 담긴 듯하면서도 아닌 듯, 다른 뜻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 멍청한 녀석이 마지막까지 남은 건, 육 대인의 취향에 꼭 맞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눈치챘다. 육 대인이 그를 고르지 않은 건, 이 바보 같은 놈을 부러 놀린 것이다.

이정은 일찍이 행동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연지를 밀었다. “어째서 육 대인께 술을 따르지 않느냐?”

연지는 곧장 일어섰다.

하지만 계회진의 곁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그 소관은 계회진의 옆을 바짝 지키며, 경고하듯 연지를 노려보았다.

계회진은 못 본 체하며 일부러 연지를 건너뛰었다. 붙잡지도, 내보내지도 않았다. 결국 연지는 제 자리를 정확히 찾아냈다. 계회진의 뒤에 선 그의 기세는 당당했다. 진루초관[각주:2]의 남기(男妓)는 커녕, 어느 집 공자의 시위처럼 보였다.

연회에 있던 사람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 제각기 주지육림[각주:3]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모두 다른 생각을 품은 채, 이쪽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상경에 변고가 생겼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대제 관가의 둘로 나뉜 세력은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었고, 하룻밤 사이에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계 가는 몰락했고, 계회진은 감금되었다. 그의 숙적 육습유만이 중책을 받아 부상했다.

계 가의 중심인 계정업조차도, 이미 두 해 가까이 조당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계 가는 기울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육 대인은, 그 앞날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사람이 이정을 조롱했다. “눈치가 빨라. 다만 그 계개 흉내는 내지 마시게. 삼전하가 전투에서 패한 건 사실이지만, 결국 황자 아닌가. 옥에 갇혔다 한들 잠시일 뿐, 머잖아 풀려날 게야. 그 계개는 잘못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 우물 아래에 돌을 던져선 안 됐지.”

“듣자하니, 계회진은 이전에 삼전하를 위해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뒤에 가서는 옛 주인을 배반했다고 하더군. 그런 식으로 수단이 지나치게 매서워서는 안 되지. 결국 신하는 신하일 뿐, 주인의 머리 위로 오를 수는 없는 법이거늘.”

“개는 개야. 길들여지지 않아. 개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전선의 전투가 다급한데, 계회진은 아직도 내부에서 물어뜯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전장에 나가 적을 죽일 생각은 커녕, 뒤에 숨어 백성의 고혈을 긁어모으며, 당을 결성하고, 작당하여 사리를 꾀할 뿐 아니라 혹형을 남용하고 있네. 대인 여러분, ‘풍교설(风搅雪)’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타나괴(打萝拐)’는요?”

계회진이 제 품에 안긴 소관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전에도 계개, 계개 불렀니? 그가 알게 될까 두렵지 않나 봐?”

거리를 더 좁히자, 등 뒤로 뜨거운 시선이 닿아왔다. 소관이 그의 허리를 감아오며 응석을 부리더니, 입을 삐죽였다. “계개는 악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누구나 욕할 수 있는데,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법은 군중을 책망할 수 없습니다.[각주:4] 설마 그가 친히 행차해 잡기라도 하겠습니까.”

계회진은 의아했다. 자신이 상경 사람들 사이에서 계개라고 불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별명이 이미 큰 강과 남북으로 퍼졌음은 몰랐다. 분주와 같은 변방의 땅조차도 자신을 때려 죽이라며 소리를 치다니.

‘‘‘타나괴’는 들어본 적이 있네. 계개가 고안한 일종의 형벌로, 사람의 발목을 산 채로 비틀어 부러뜨린 후 다시 붙이는 것을 반복하지. 이렇게 몇 차례나 반복하여 죄인이 고통을 겪다 죽어야 끝나는 형벌이야. 헌데 ‘풍교설’은 무엇인가? 이 역시 계개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

“그렇습니다. 듣자하니 계개는 겨울날 눈이 가장 많이 내릴 때 사람을 끌어내어, 옷을 벗기고 대나무 판자로 사람을 내려쳤다더군요. 대나무 판자를 휘두르며 바람을 일으키고, 눈보라를 휘젓는다. 그래서 ‘풍교설’인 겁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누군가가 바로잡았다. “그렇지 않아.”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뜻밖에도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은 육 대인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그가 배와 마차에서 피곤한 것을 보고, 흥미가 없어 입을 열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정적 계회진 이야기가 나오자, 육 대인의 얼굴에는 비로소 약간의 흥취가 떠올랐다. 자리의 관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속으로 이 아첨이 먹힌 것이라 생각하고, 즉시 공손히 말했다. “부디 육 대인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대나무 판자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집행하는 시기가 반드시 겨울일 필요는 없다.” 계회진은 겸손한 척하면서도 자만심이 가득했다. “여기서 ‘설(雪)’은, 대나무 판자가 몸을 내려칠 때 살갗이 찢기고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가리키네. 다만 ‘설’을 쓰는 것이 더 우아해 보이기에 ‘풍교설’이라 부르는 것이지.”

“만약 ‘풍교설’이 통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치명적인 수법이 있는데, ‘려타곤(驴打滚)이라 부른다. 명을 따르지 않는 자의 온몸 가죽을 벗겨내는데, 가죽이 벗겨진 사람은 한동안 숨을 쉬고 의식도 남아 있지. 이때 결박을 풀면, 그들이 땅에 쓰러져 구르며 경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네.”

사람들은 눈앞의 이 ‘육 대인’이 그 끔찍한 형벌들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투와 말결 사이에는 은근히 만족해하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 방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고, 분위기는 이내 기묘해졌다.

“계씨 그자는 큰 글자를 하나도 모른다[각주:5] 들었는데, 이름 짓는 일에는 뜻밖에도 조예가 있군.”

“내가 보기엔 폐하께서 이 인물을 오래전부터 경계하고 계셨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태자를 세우지 않고, 먼저 태부를 세웠을까. 태부란 무엇인가, 제왕의 스승이오. 그는 글자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어찌 태부의 중임을 감당하겠나. 참으로 체면을 구기는 일이야. 아마도 폐하께서 시간을 벌기 위해 쓰신 계책[각주:6]일 터, 우선 그가 그가 품은 이리의 야심[각주:7]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일 테지.”

누군가가 말을 받았다.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 어떤 이가 폐하께 한 공자를 바쳐 남비(男妃)로 들이려 했는데, 궁에 들여보내지기도 전에 계개가 먼저 찾아가 그의 가죽을 벗겨 버렸다지. 그리고 성문에 걸어 말렸어. 그뿐 아니라, 공자의 그것[각주:8]을 잘라 내어 밀랍으로 봉해 두었다가, 그의 부모에게 맡겨 보관하게 하고, 조상을 모신 사당에 바치도록 강요했다더군. 이후로는 공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각 집안에서 여식조차 감히 궁으로 들여보내지 못하게 되었네.” 사람들은 하하 웃으며 맞장구를 쳤으나, 점차 웃음은 사그라들었고, 섬뜩함만 남았다.

계회진은 웃기만 하고 말이 없었다. 소문은 사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 흐물거리는 것 또한 그가 직접 잘라냈다. 처진 상태로는 자를 수 없어, 무언가를 뒷구멍에 찔러 넣어야 했다. 재미를 느끼자 앞쪽은 단단히 곧게 섰고, 계회진은 바로 그때 칼을 휘둘러 내리쳤다.

처음이라 경험이 없었기에, 그곳의 피가 그의 온몸에 튀었다. 참으로 재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같이 술잔을 들었고, 곧 아첨이 이어졌다. “이제 폐하께서 계개를 처단해 조정의 기강을 바로 세우셨으니, 대제의 앞날은 육 대인께 달렸습니다.”

계회진은 겸손한 태도로 육습유를 대신해 그 잔을 받았다. 손에 든 술잔을 한 번 돌려 손수 그 소관에게 먹였다.

그가 마신 뒤에도 별다른 탈이 없는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술을 따르거라.”

소관은 달콤하게 웃었고, 술이 담긴 주전자를 집어들기도 전에 계회진에게 눌려 제지당했다.

“네게 한 말이 아니다.”

말은 뒤에 서있는 연지에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계회진은 시선을 앞에 둔 채 입가에 웃음을 머금을 뿐, 끝내 상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소관은 곧 뜻을 알아차렸고, 더는 스스로 무안함을 사지 않기 위해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연지는 속눈썹을 가볍게 떨며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계회진 곁에 꿇어앉았다. 말을 꺼내려다 말기를 반복했으나, 계회진과 눈을 마주치기가 민망해 그의 가슴 앞 옷자락에 은실로 수놓인 구름과 학 무늬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문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시지 마세요.”

계회진은 낡은 수법을 꺼내 들었다. 귀를 바짝 붙여 연지에게 목소리를 조금만 더 높이라고 했다.

“마시지 마세요.”

“왜 그래야 하지? 이유를 하나씩 말해 봐.”

연지의 준수한 얼굴이 단번에 붉어졌다.

그는 아까 저쪽을 향해서는 얼음처럼 차갑고, 누구든 다가오면 한 발로 걷어찰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지금 ‘육 대인’을 향한 그는 온순하기 그지없고,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얼굴 가득 첫사랑의 감정을 막 터뜨린 듯[각주:9] 어리숙한 표정을 띠고, 온 마음이 다정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이지 조금도 숨기지 못한다.

계회진은 더욱 확신했다. 이 녀석은 사람을 잘못 보았다.

막 문에 들어서자, 먼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어 옥패를 알아보았다. 옆 사람이 ‘육 대인’이라 부르니, 두 눈이 반짝였다. 육습유가 어디서 얻어온 풍류빚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저는 당신이 상경에서부터 쉬지 않고 말을 몰아[각주:10]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압니다. 이처럼 먼 거리를 거쳤는데, 술을 마시는 건 적절치 않으니까……” 연지는 진중하면서도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마시지 않았으면 한 거예요.”

계회진은 찬반을 밝히지 않았다. 말을 많이하면 실수할 것이고, 아직 이 사람의 내막을 잘 알지 못해, 들통이 날 수 있었다. 다만, 설령 이 사람이 육습유에게 정을 품고 있다 해도, 그것은 일방적인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계회진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는 앞에 놓인 요리를 각각 한 젓가락씩 집어 연지에게 나누어 주며,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나하고 같이 좀 먹어주렴. 내가 들으니, 너희는 손님을 위해 시중 들 때는 먹지 못한다고 하던데. 배가 고프진 않니?”

무엇을 떠올린 건지, 연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고, 이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밥을 퍼 먹었다. 순식간에 한 그릇의 흰쌀밥이 바닥을 드러냈다. 분명 몹시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계회진은 그에게 다시 한 그릇을 더 떠주었다.

밥 세 그릇을 다 먹고 나서야, 연지는 조금 배가 찬 듯했다. 계회진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밥통.[각주:11]

연지가 밥을 다 먹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고서야, 계회진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 먼저 젓가락을 들지 않거나, 혹시 모를 독을 확인한 뒤에야 밥을 먹는 것은, 바로 그가 여러 해 동안 지켜온 습관이었다.

계회진은 겉으로는 걱정하는 듯했지만, 이는 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경성에 가본 적 있니?”

연지는 잠시 멍해졌다. 뜻밖에도 이 말 때문에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는 계회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깨달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음……예전에, 경성에 한동안 머문 적이 있어요.”

계회진은 그가 왜 갑자기 이토록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는지 알았다.

이 연지라는 자는, 아마 이전에 육습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 은혜라도 입었는지, 그 결과 헛되이 마음에 두고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생각해온 모양이었다. 지금 마음에 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허탈해졌을 터였다. 계회진은 속으로 냉소했다. 설상가상으로 육습유 본인이 온다고 해도, 이 바보 같은 녀석을 꼭 기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온 마음을 헛되이 쏟았고, 육습유를 어딘가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술을 충분히 마시고 밥도 배불리 먹고나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현악과 관악 소리 속, 배가 불러 따뜻해진 사람들은 저마다 음욕을 드러냈다. 맞은편에서는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행위[각주:12]를 시작했다.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연한 살을 드러내며 소관이 자신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게하고 시중 들게 했다.

연지는 젊고 혈기왕성하여, 단 두 번 보기만 해도 불편해져 고개를 숙이고 앉은 자세를 고쳤고, 불현듯 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가 당신을 데리고 갈게요.”

“무슨?”

그의 말은 두서없었고, 계회진은 그저 웃음이 났다.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제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듯했다.

연지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저, 저는……당신을 따라가고 싶어요.”

계회진은 많은 노력을 들여서야 ‘흥’ 하는 콧방귀를 억누를 수 있었다.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연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잡으려 했고, 계회진은 태연하게 피하며 속으로 그를 꾸짖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바보군! 사람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다니!

“네가 나를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그럼 너는 내가 누군지는 아니?”

계회진이 그를 보며 웃었다.

“당……당신은 육습유입니다.”

저 세 글자가 언급되자, 연지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이름은 그의 앞에 서 있는 산 사람보다도 더 끌리는 듯했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신을 쏟게 만들었으며, 좀처럼 잊히지 않게 했다.[각주:13]

“나는 네 속사정조차 분명히 알지 못해. 이름 하나에, 그것만으로 나를 따르겠다고 정한 거야?”

연지는 얼굴이 조금 붉어졌고, 다소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럼 내가 묻겠다. 방금 자리에서 논하던 계회진, 너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연지는 질문을 받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뒤에서 남을 화제로 삼아 말하는 버릇이 없었고, 이 계씨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단지 그가 육습유의 철천지원수라는 것만 알았다. 자리에서 오간 몇 마디 말로 미루어 보아 이 사람은 마음이 몹시 매정하고 수단이 독해, 무척이나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일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그가 당신을 괴롭혔나요?” 계회진은 연지가 이렇게 물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 그는 날 매일 괴롭혀. 네가 그를 어쩔 수나 있겠어? 그뿐만이 아니라, 나 육습유는 계회진의 손아귀에 진 사람이기도 해. 하나부터 열까지 그보다 못하지. 그래도 나를 따라오겠다는 거야?”

계회진이 냉소를 흘렸다.

“……”

연지는 억울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런 말투를 듣자 감히 다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책장 넘기듯 얼굴을 바꾸는 걸까.

이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계회진은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더는 연지와 치근덕거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일어나 떠나는 것을 보자, 연지는 급히 뒤따라가 손을 뻗어 붙잡았다. 이번에는 계회진의 손을 손바닥 안에 단단히 쥐었다.

다급한 나머지,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자신의 진심을 두 손에 받쳐 내놓았다.

“저……저는 당신의 이름이 육습유라는 건 압니다. ‘시무이가, 관무옥송, 읍무도적, 야무기민, 도불습유(市无二贾, 官无狱讼, 邑无盗贼, 野无饥民, 道不拾遗)’[각주:14]에서 나왔고, 그건 당신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도요. 계회진짜인지, 계화가짜인지[각주:15]하는 사람은, 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제 눈에는 당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당연하지만 당신은 뭐든 그보다 나아요. 저……저는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소년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계회진이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시무이가, 관무옥송, 읍무도적, 야무기민, 도불습유. (시장에서 값을 속이는 일이 없고, 관청에는 송사가 없으며, 고을에는 도적이 없고, 들판에는 굶주린 백성이 없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

계회진은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사람마다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나, 그는 생각했다. 이 글자들을 이어 쓴다면, 절반 이상이 쓸 줄 모르고, 절반 이상은 아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글자를 이름으로 삼고, 그 안에 기대와 사랑을 숨겨두었다.

계회진은 겉으로 웃고 속은 웃지 않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연지라는 자는 저런 얼굴을 헛되이 가졌고, 입만 쓸데없이 달려있구나. 참으로 미워죽겠다.

  1. 小倌; 소관. 남성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술시중을 들며 상황에 따라 성적인 접객도 하는 남성 예기(艺妓)를 뜻함. [본문으로]
  2. 秦楼楚馆; 진루초관. 고대의 향락가 및 유흥가를 상징한다. [본문으로]
  3. 花天酒地; 화천주지. 주지육림(酒池肉林), 혹은 술과 색을 밝히는 방탕한 생활을 뜻한다. [본문으로]
  4. 法不责众; 법부책중. 법은 여러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성어이다. 본문에서는 군중 속에 섞이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식의 뻔뻔한 자기 합리화를 위해 쓰였다. [본문으로]
  5. 大字不识一个; 직역하면 ‘큰 글자를 하나도 모른다’. 실제로는 글을 거의 모르거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를 낮춰 이르는 관용 표현이다. [본문으로]
  6. 缓兵之计; 완병지계. 적의 공격을 늦추는 계책,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상대를 달래거나 국면을 미루는 방도를 뜻하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7. 狼子野心; 랑자야심. 이리의 새끼가 지닌 본성 같은 흉포한 야심을 뜻한다. 흉랑한 본성이나 야심이 쉽게 바뀌지 않는 사람의 속성을 비유한 성어이다. [본문으로]
  8. 성기. [본문으로]
  9. 情窦初开; 정두초개. 직역하면 감정의 구멍이 막 열리기 시작하다로, 청소년기나 첫사랑 등 사랑에 눈뜨기 시작함을 뜻하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10. 快马加鞭; 쾌마가편. 빠르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다, 더욱 속도를 내다 혹은 박차를 가하다 등의 뜻을 지닌 성어이다. [본문으로]
  11. 饭桶; 반통. 밥통 혹은 밥벌레라는 뜻이다. 계 대인은 연지 보고 밥벌레라며 비웃었을 것 같은데, 말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나마 귀여운 축에 드는 밥통을 골랐습니다…… [본문으로]
  12. 성교. 성행위. [본문으로]
  13.   念念不忘; 연연불망. 늘 생각하며 잊지 않음, 전념, 한 가지 일에 몰두함 등등을 뜻하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14. 市无二贾, 官无狱讼, 邑无盗贼, 野无饥民, 道不拾遗; 시장에서 값을 속이는 일이 없고, 관청에는 송사가 없으며, 고을에는 도적이 없고, 들판에는 굶주린 백성이 없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 이 중 ‘도불습유(道不拾遗)’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사회 기강이 바로 서 있고, 백성이 도덕적인 이상적 상태임을 가리키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15. 원문; 什么季怀真季怀假. ‘계회진(季怀真)’의 이름에 쓰인 ‘참 진(真)’은 ‘참’ 또는 ‘진실’을 뜻하는데, 이를 이용한 말장난. ‘거짓 가(假)’는 ‘거짓’과 ‘임시로 정해 놓은 것’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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