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회진은 황후궁의 문을 나서자마자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우글쭈글한 피부에, 용포가 아닌 도포를 걸쳤다. 먼지떨이를 안은 채 맨발로 그의 뒤를 쫓던 궁인들은 계회진이 오자 하나같이 자발적으로 화살이 도달할 수 있을 정도 1의 거리에 멈춰 섰다. 2
계회진은 절을 하지 않고, 황제의 몸을 위아래로 힐끗 훑어보며 웃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십니까?”
수수방관하던 그가 웃으며 손을 뻗자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황제의 다른 신발 한 짝을 받쳐주었다. 계회진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는 황제에게 신발을 신겼다. 뒤이어 일어나 고개를 숙여 그를 살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눈에 기민함이 가득해 황제의 낯을 자세히 관찰했다.
결국 그의 기괴한 시선 아래, 황제는 떨기 시작했다.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처럼.
계회진은 갑자기 허리를 숙여 몸소 예를 차렸다.
“날이 추워졌으니, 폐하를 궁으로 모셔라. 장진인은 가지 말고 남도록.”
도포를 걸친 사람이 남았는데, 좀 전에 계회진에게 신발을 건넨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멀리 가는 것을 보곤, 계회진이 와서 묻기도 전에 주동적으로 자백했다. “폐하께서는 최근 병세가 안정되었기에, 발병 시간은 매우 규칙적입니다. 술시에 발작이 일어나는데, 발작할 때는 보통 정신이 맑지 않습니다. 오로지 단약에 대해 하문하실 뿐이고, 대략 진시에 정신이 맑아집니다. 이전에 발병했을 당시에는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였으나, 최근에는 흐릿하게 떠올리는 것 같더군요.”
계회진은 곧은 자세로 섰다. 그는 눈을 감고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들었음을 표했다.
“조사하라고 했던 건 알아냈나? 유언비어는 어디서 나온 것이지?”
“대인께 답합니다. 분주라고 합니다.”
“분주?”
계회진은 미간을 한껏 구기곤, 낮은 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찍이 삼희를 쫓아낸 것이 한스러웠다. 사람을 걷어차고 싶어도 걷어찰 수가 없다니. 장진인 같은 늙은 뼈는 그에게 걷어차이면 산산이 부서질 것이 불 보듯 훤했다. 때문에 마음속으로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망치게 된다를 되뇌며, 손을 내저어 사람을 쫓아냈다.
해묵은 옛 일을 떠올려 울화를 억누른 계회진은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누워 잠을 잤다. 해가 중천에 뜨자 삼희가 조심스레 깨우며, 호부시랑이 면회를 청해왔음을 알렸다.
계회진은 눈도 뜨지 않고 머리도 들지 않은 채, 한 손을 침상 휘장 밖으로 뻗어 놓여있는 물건을 만져냈다.
삼희는 이런 일을 자주 겪었기에 즉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번 씻은 여요 벼루가 그의 등 뒤쪽 벽에 던져지며 깨졌다. 삼희는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수행 하인들은 눈치껏 계회진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청화 자기와 필세 3를 보충했다. 4
태부의 직책을 겸하고 있는 계 대인은 독서인을 죽도록 싫어했고, 화를 낼 때에도 오로지 붓과 먹, 종이와 벼루를 망가뜨렸다.
조정 내에서 3전하를 위해 말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오늘 잇달아 찾아와 하나같이 코에 재를 뿌렸다. 계회진은 세 개의 필세와 두 개의 문진을 깼다. 다음 날 아침에는——육습유가 찾아왔다. 5
일찌감치 예상한 듯, 계회진은 침상 휘장을 들추자 이미 단정히 차려입은 상태였다. 그는 도발적인 얼굴을 하고 육습유를 응시했다.
정말 기이한 장면인데, 두 사람의 용모는 판에 박은 듯 닮아있었다. 그러나 기질은 확연히 다르다. 하나는 바르고 하나는 사악하며, 하나는 고요하고 하나는 꿈틀거리는 것이, 마치 태극무늬의 양면처럼 서로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계회진이 조금 더 솟아있는데, 발판을 밟고 사람을 보았기에 높은 곳에서 굽어 살피는 게 되었다.
계회진은 그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육습유의 허리춤에 걸린 옥각玉珏을 떼어냈다. 옥각에는 오른쪽으로 휘어진 꼬리에 찢어진 입을 가진 잉어가 새겨져 있었다. 계회진은 이를 손에 쥔 채 무심코 굴렸다.
육습유가 손을 내밀었다. “네 증표를 내게 줘.”
“왜 이리 급하실까. 내가 물어보는 말에나 답해. 다 처리한 거야?”
육습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믿을 것 같아?” 계회진은 폭소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대치했다. 잠깐이지만 육습유도 미소 지었다. 명백하게도 비슷한 용모였다. 육습유가 어떤 사람을 쳐다보며 웃는다면, 그 사람은 그저 봄바람이라 느낀다. 그러나 계회진이 쳐다보며 웃는다면, 아마도 첫 반응은 큰 불운이 겪게 되리라일 것이다.
“잘 처리한 셈이라 할 수 있어. 비밀에 부쳐 장례를 치르지 않았으니,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좋은 구실을 찾아야지.”
계회진은 이것이 누가 내린 결정인지 알았다. 그는 이 네 글자를 음미했고, 의심이 많은 본능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손을 쓸 방도가 없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느린 속도로 몇 사람의 이름을 읽었다.
“이 사람들은 그날 밤 모두 있었지. 우리 3전하께서는 멱따이는 돼지처럼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계 가의 조상 18대의 조를 샅샅이 훑으셨다. 죽은 사람도 그에게 불러져 살아났는데, 어째서 비밀에 부쳐 장례를 치르지 않겠단 거지?”
육습유는 그의 뜻을 알아듣고 침묵을 지켰다. 계회진이 지목한 사람은 전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말해볼게, 네가 그날 밤 왜 이와 같은 큰 전투가 벌어졌을까. 무의미한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서?”
계회진은 가까이 다가갔고, 도발하듯 말했다. “그들이 죽고 사는 것이 나와 무슨 연관이 있냐고? 일부러 네가 역겨움을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고, 바로 네가 불쾌하길 바라기 때문이야, 어때? 너는 손을 쓸 수가 없어. 내가 널 대신할 거니까. 이 일은 네가 대전하를 찾아가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가 직접 손을 쓰게 만드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육습유가 침묵하는 것을 본 계회진은 더욱 통쾌해졌다. 그는 품에서 허리에 차는 요패를 꺼내 길가의 들개를 대하듯 육습유에게 던졌다.
대제의 염철장사는 관영 6에 속한다. 그러나 3년 전 계 가의 손에 단단히 장악되어 계회진과 계정업의 재물을 쌓는 수단이 되었다. 이 요패는 그의 증표로, 요패를 보는 것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육습유와 마음이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반년 동안 떠나야 하기에 이 물건은 반드시 남겨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 나라의 재정에 오류가 생길 뿐 아니라, 이융과 타타르 등의 오랑캐들로 인해 끝을 보게 될 것이다. 7
육습유는 떠나기 전에 가죽끈으로 묶은 조서를 남겼다.
그 위에는 늑대 이빨이 달렸다. 계회진은 한참을 뜯어보곤 중얼거렸다. “무슨 낡아빠진 수법이야.” 그는 원래대로 묶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불현듯 욕설을 내뱉었다.
알고 보니 이 조서는 늑대 이빨로 단단히 묶는 것 외에도 자색 인주로 봉해두었다. 이는 그대로 칙륵천으로 가져가 초원 오랑캐들의 대칸에게 넘겨야 하는 조서였다. 그 사이에 조서가 누군가에 의해 열린 적이 있는지는 자색 인주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색 인주로 봉인한 조서는 천자만이 내릴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자줏빛 진흙은 대단히 드물어 분주에서만 생산되는 것이다.
계회진은 화가 나서 또다시 물건을 던지고 싶어졌다.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한숨을 쉬고, 삼희를 불러 마차를 준비할 것을 명했다.
“대인, 어디로 가나요?”
계회진은 내키지 않다는 듯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다.”
신시가 지났을 무렵, 마차 한 대가 계 가 조상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계회진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에서 빠져나와 무릎을 꿇은 삼희를 밟아 진흙을 묻혔다. 밖에서 기다리던 집사는 그를 맞아들이고, 그 길로 본채까지 모셨다. 사람이 들어오기도 전에, 약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집사는 문 앞에 서서 공손히 외쳤다. “주인어른,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8
“알았다……”
들려오는 말소리는 작은 데다 기운이 없어, 사람에게 마치 죽을 날이 가까운 손목을 떠올리게 했다. 소리만으로도 이 사람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회진은 집사가 문을 열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곧게 뻗은 등을 돌연 숙였고,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쿵쿵 찧었다. 연달아 세 번 행하자 이마에는 이미 푸르스름한 멍이 들었다. 집안의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는 의연한 태도로 공손하게 무릎 꿇은 자세를 유지했다. 9
집사는 물러갔다. 이들 부자가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점차 중정의 부스럭 소리를 내며 솨솨 울리는 대나무 잎에 가려졌다.
진시, 황제의 정신이 맑아졌고, 옆에 서있던 장진인은 기쁜 기색을 보였다. 황후는 황제의 시중을 들며 영단을 삼키게 했다. 금란전 바깥에서 새벽 조정을 보는 신하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마음이 좋지 않아 서로 쳐다보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짐작할 뿐 감히 더 이상 귀엣말을 나누지 못했다. 10
반 시진 후, 조정과 민간은 온통 떠들썩해졌다. 줄곧 계 가를 방임하던 황제가 뜻밖에도 3전하의 일로 계회진 계 대인을 처벌했기 때문이었다. 11
군주의 성의를 조금 엿보고 나자, 어떤 이들은 마치 안정제를 먹은 것처럼 더는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가 한 권 한 권 계회진에 대한 참작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평소 한 시진 안으로 끝나는 새벽 조정은 두 시진으로 불어났다. 호칭도 점차 방자해졌는데, 계회진은 두 시진 만에 사람에서 개로 변했다.
그가 온갖 나쁜 일을 일삼는 데다, 행동거지가 거만함을 탓한다. 조정에서는 이미 원성이 자자하다. 단지 함께 계부로 달려가 사람을 난도질하여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약을 복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황제는 엉덩이를 더는 용상에 붙여두질 못했다. 손을 크게 휘두르며 건성으로 계개를 저택에 가두고 추후 참수할 것을 명했다. 황후의 체면을 고려한 것인지, 그들의 부친 계정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손뼉을 치며 쾌재를 불렀다. “우리 대제는 아직 구할 수 있다! 폐하, 영명하십니다! 역대 조상의 가호가 있기를! 하늘이 대제를 도울 것이다!”
계개가 실각했다는 소식은 세상에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졌고, 황제가 3전하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피가 물보다 진함에는 틀림이 없으니, 한동안 가둬두고 풀어줄 것이 분명했다.
조당은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은데, 아무도 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마차 한 대가 상경을 빠져나와 분주 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마차 속의 계회진은 재채기를 했고, 삼희를 보며 의심조로 말했다. “네 녀석이 속으로 날 욕한 건 아니겠지.”
삼희는 아첨하며 그의 다리를 두드렸다. 계회진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는 머리를 차창으로 내밀어 바람을 쐬었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고개를 수그린 뒤, <천자문>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멍한 머리는 글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읽다가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삼희에게 물었다.
가는 길에 박차를 가했기에, 상경에서 분주까지 가는 데 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중에 배불리 먹고 자고, 심심하면 삼희를 괴롭혔다. 그러다 분주 경계에 이르자 계회진은 갑자기 마차를 멈추게 했고,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삼희를 보았다.
마차는 주차된 곳은 깊은 산골짜기인데,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삼희는 온몸의 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고, 생각할 틈도 없이 계회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계회진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계회진은 “쯧” 하는 소리를 내며 무너지듯 앉았다. 이어서 턱을 괴고 신발 끝으로 삼희의 얼굴을 받쳐 올렸다.
“너는 내가 왜 네게 삼희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아니?”
삼희는 연공서열 때문이 아니냐며 울었고, 그의 앞에는 대희와 이희가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12
“맞아, 근데 아니기도 해. 네 놈 앞의 두 놈이 일곡과 이뇨였으니, 네 놈 차례가 오면 응당 삼상조라고 부르는 것이 옳았지. 그런데 누가 우리 누님에게 말하길 아전이 태어났는데, 네게 이런 이름을 지어주면 재수가 없지 않겠냐고 하더구나.” 13
“우리 누님이 네게 좋은 이름을 주었고, 누님이 네 목숨을 살려준 것도 누님이야. 내가 꺼낸 말의 담긴 뜻을, 너는 이해했겠지?”
삼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황후마마가 자신의 조상이라고 말했다.
계회진은 그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제미붙을 놈 누가 네 조상이라고? 주제넘기는. 꺼져라. 너는 총명한 사람이니, 돌아가서 우리 누님을 시중들고, 일이 있으면 다시 알려오거라. 나를 어떻게 찾으면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14
그는 나른하게 손을 흔들며 바깥에 있는 말을 가리켰다.
삼희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것은 그가 칙륵천으로 따라가지 말고 돌아가서 황후마마를 시중 들라는 것이다. 그는 즉시 계회진에게 인사를 올리고, 뒤이어 기뻐하며 떠나갔다.
삼희가 떠나가자 계회진은 어쩐지 적적해졌는데, 모르는 글자를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소식은 날아다녔고, 말보다 더 빨랐다.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기세가 먼저 도착했다. 분주는 대제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이렇게 큰 관리가 납실 일이 없었다. 특히 이번에 온다는 육습유 육 대인은 폐하께서 흠점하여 이융으로 보내는 특사였다. 전쟁이 긴박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데다, 육습유 일행은 국가의 운과 엮여 있었다. 이 때문에 더욱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이른 아침부터 지주를 파견하여 길가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파견된 지주는 재작년에 상경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는 금란전 바깥 먼 곳에 서서 힐끗 보았을 뿐이지만, 육 대인이 아름다운 인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상대방이 마차에서 내렸고, 뒤이어 허리춤에 매단 옥각이 보였다. 이로서 더욱 확실해졌다. 육습유 육 대인임이 틀림없었다!
대제 사람들은 육습유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상당수가 그의 옥을 알았다.
이 옥은 명성이 자자한데, 더불어 여러 해 전의 식사 후의 우스갯소리도 얽혀있다. 15
이쪽에서 옥을 보면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면, 저쪽에서 계회진이 안면을 바꾸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온몸의 포악하고 교활한 기운이 한 번에 걷힌 그는 더 이상 목을 빳빳이 세워가며 사람을 보지 않았고, 웃으면 봄바람 속에 앉아있는 듯했다. 정말이지 육습유의 언행과 행동을 10할 중 10할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삼희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계회진을 본다면 자세히 뜯어보아야 분별이 가능할 터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증표로 쓰인 친서를 확인하고 난 뒤, 지주는 그에게 숙소를 소개했다. 16
계회진은 한참을 듣고 나서 온화하게 말했다. “이곳에 주루가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이 홍수첨향 이라고 하던데, 굶주린 사람 17에게 괜찮은 곳 같더군요.” 18
지주는 어안이 벙벙했다. 홍수첨향의 채색은 괜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채색보다 더 좋은 것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남색이었다.
육 대인이 단수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육 대인은 이전에 처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부인은 난산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세 살 때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에 육 대인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이때부터 소매를 끊고 전향했을 것이다. 혹은 전문적으로 뒷문을 넘어간 것일지도모르는 일이고. 19
계회진은 육습유의 명성을 손상시키면서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그가 기생을 데리고 놀려는 것임을 뻔히 암시했고, 기생은 남자여야 했다.
지주는 잽싸게 괴이한 표정을 갈무리하고, 사람을 시켜 달리는 말에 채찍질할 것을 명했다. 계회진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이후 즉흥적으로 현지 관리들을 데리고 육습유라는 이름을 걸고 당당히 홍수첨향의 문턱을 넘었다.
벼슬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면이니, 입장하자마자 기생을 데리고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우선 음식을 올리고, 나중에 사람을 올려야 했다.
거기에 더해 사람이 왔을 때, 직접 껴안고 입 맞추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단지 기생을 불러 금줄을 뜯으며 노래 부를 것을 분부할 뿐이었다.
계회진은 웃으며 냉담하게 방관했다.
방문이 열리자 한 무리의 어린 기생들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모두 한 차례 교육을 받았는지, 걸을 때 흔들리며 생동감 있는 자태에 영기가 있었고, 부드러움도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차마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계회진이 먼저 고르기를 기다렸다.
계회진은 흥이 부족해 눈빛으로 하나씩 쓸어내렸고, 멈췄다.
대열의 맨 끝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는데, 다른 이들과 달랐다. 다른 사람은 모두 가냘프며 패기가 없는 것처럼 서 있었고, 여자의 부드러움을 배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두 발을 조금 벌린 채 서 있었다. 그의 등은 곧았고, 어깨는 넓으며 허리는 좁았다. 확실히 정직하고 올곧았다고 할 수 있다. 나이는 열일곱 안팎에 지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계회진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아름다운 한 쌍의 눈이었다.
이 사람은 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과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는데, 미간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흉맹한 시선이 맹렬하게 수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계회진을 응시했다. 계회진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숨이 멎은 것 같았고, 즉시 머리 아랫부분과 가슴을 억누르며 기복을 보였다. 이는 분명히 긴장한 것이다.
계회진은 그의 귀뿌리에 떠오른 옅은 붉은 기를 주시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은 계회진의 얼굴을 감히 볼 수 없는지, 그의 신발만 쳐다보았다.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모은 한 가닥의 용기도 그가 겨우 고개를 들어 계회진의 허리춤을 올려다보게 하는 것에 그쳤다.
그는 그 옥각을 쳐다보며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계회진이 그를 향해 걸어가자 다른 기생들이 부러워하며 쳐다보았다.
계회진은 그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상대방은 목젖을 굴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가볍게 두 글자를 말했다.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주렴.” 계회진은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입술이 자신에 귀에 닿을 정도로 밀착했다. 사실 그는 제대로 들었다.
“연……연지燕迟.”
그는 용기를 내어 계회진을 바라봤고, 성실했기 때문에 앞에 있는 사람에게 열심히 이름을 말했다.
“연지……”
이 두 글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따뜻함을 머금고 계회진의 입술 새를 한 바퀴 돌았다. 연지의 숨소리는 더욱 묵직해졌다.
그리하여 계회진은 다시금 웃었다. 그는 연지를 쳐다보았고,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본다면 상대방이 흥분하다 못해 기절하게 될 것이라 의심했다. 연지는 몸 옆으로 늘어뜨린 손가락 밑부분을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는데, 계회진의 손을 잡고 싶은 눈치였다. 거기에 더해 감정을 자제하기 어려운 데다가, 하고 싶은 말도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육 대인의 입맛이 기이하다고 여겼다. 전문적으로 남자를 모시고 몸을 맡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을 고르지 않고, 저 진기한 딱딱한 뼈를 고르려고 하다니. 그 순간 그는 신발 끝을 돌렸고, 많은 사람들의 경악하는 눈길을 받으며 옆에 서 있는 작은 기생을 품에 안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계회진에게 선택을 받은 기생은 기뻐하며, 즉시 그에게 달라붙어 환심을 얻으려고 애썼다.
연지라는 이름의 소년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선 채, 계회진을 향해 뻗으려던 손을 거둬들였다.
- 鸡皮鹤发; 계피학발. 닭껍질 같은 피부와 백발을 뜻하며 노인을 형용하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 一箭之地; 일전지지. 매우 가까움을 이르는 말이자 화살이 도달할 수 있는 매우 먼 거리를 뜻한다. [본문으로]
- 汝窑; 여요. 북송 시대에 지금의 허난성 루저우 지방에서 생산되던 자기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 笔洗; 필세. 붓을 빠는 그릇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镇纸; 진지. 고대 중국의 전통 수공예품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종이를 누르는 용도로 사용한다. [본문으로]
- 盐铁; 염철. 소금과 철기를 뜻한다. [본문으로]
- 官营; 관영. 공영. 주로 공적인 기관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하고 관리하는 것 또는 그렇게 하는 사업을 뜻한다. [본문으로]
- 申时; 신시. 십이시의 아홉째 시를 뜻하며, 곧 오후 3시부터 5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또는 이십사 시의 열일곱째 시를 뜻하는데, 이는 오후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行将就木; 행장취목. 오래지 않아 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죽을 날이 가깝다 등의 뜻을 가진 성어이다. [본문으로]
- 辰时; 진시. 십이시의 다섯째 시를 뜻하며,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또는 이십사 시의 아홉번째 시를 뜻하는데, 이는 오전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伴时辰; 반 시진. 1시간을 뜻한다. *원문은 伴个时辰이나 편의상 다듬었습니다. [본문으로]
- 论资排辈; 연공서열. 자격을 따지고 서열을 중시하거나 연령 서열을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 一哭二闹三上吊; 일곡이뇨삼상조. 1. 울고 2. 소란 피우고 3. 목을 맨다. 이는 민간 속담으로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시기의 소설에 이미 이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혼 여성이 남편이나 시댁에 행패를 부리는 수단이라고 하여 부정적 의미를 띠었다. [본문으로]
- 直娘贼; 직랑적. 제미붙을 놈. 제 어미와 붙어먹을 놈이라는 뜻의 욕설이다. [본문으로]
- 茶余饭后; 다여반후. 차를 마시거나 밥 먹은 후의 한가한 휴식 시간을 뜻하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 如沐春风; 여목춘풍. 봄바람 속에 앉아있는 듯하다. 지극히 좋은 교육을 받다라는 비유적 뜻도 있다. [본문으로]
- 红 袖添香; 홍수첨향. 붉은 소매에 향을 더하다라는 뜻? 군유질부도 그렇고 고풍 탐미 작품에서 기루나 주루 이름에 붉은 소매를 붙이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네요. [본문으로]
- 菜色; 채색. 푸성귀의 빛깔 또는 굶주린 사람의 혈색 없는 누르스름한 얼굴을 뜻한다. [본문으로]
- 走后门; 뒷거래. 뒷거래를 하거나 뒷구멍으로 손을 쓰는 것, 뒷문으로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연줄 따위로 입학하거나 취직하는 것도 이에 속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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