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杯茶/회인怀刃 13

11장.

“이렇게 하지, 약속을 세 가지 할까?”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날 밤 일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마치 한 밤의 좋은 꿈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의장. 위민은 너그러이 사방이 탁 트인 물가의 정자 하나를 영당으로 꾸미고, 상복과 흰 촛불로 가득 채웠다. 정거한의 시신은 그 안에 안치되었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명검 대회에 변고가 생기자 실망해 떠난 이들도 있었고, 잃어버린 ‘불의검’에만 마음을 두고 정거한의 무능을 은근히 탓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정거한의 유일한 혈육은 멀지 않은 건물에 연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월은, 설령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그를 만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산파는 여전히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

10장.

……작은 녀석, 생각보다 꽤 세심한 걸.이 한 마디는 마치 평지에 울려 퍼진 천둥 같아, 현장에 있던 이들의 가슴에 가득한 의혹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허탈한 빗물처럼 쏟아지게 했다. 강리는 고개를 들어 위가의 날 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으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위가 또한 피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조월 낭자에게 묻습니다. 어젯밤, 그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저는……” 조월은 강리를 한 번, 위가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는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위가는 말을 이었다. “저는 어제 무대에서 내려온 뒤, 심히 부끄럽고 마음이 편치 않아, 실례를 사과하러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겨우 시간이..

9장.

“나와 그는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5월 14일, 명검 대회가 밝았다. 내려쬐는 뙤약볕은 여름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그야말로 환하며 강렬하다. 척조석이 연무장에 발을 들여놓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초조한 낯을 하고 있었는데, 그를 보고 크게 실망하더니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설락은 과연 더는 척조석을 부르지 않았다. 그 자신도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으나 관망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척조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의 옆에는 뜻밖에도 강리와 조월이 서있었다. 이곳 연무장은 어제 펼쳐진 신예 시합 때보다 매우 활기가 넘쳤다. 결국 불의검과 관계된 일이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높은 무대 위에 더 이상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무대 아래는 사..

8장

우리가……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해질 무렵, 강리는 이미 더듬거리며 침상에서 내려왔고, 누운 흔적이 남지 않게 정돈했다. 척조석은 뜰에 없었다. 그는 물을 뿌려 바닥을 쓸던 가복에게 간단히 설명한 후, 자신이 머무는 서원의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누워서 휴양하는 대신, 서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서안 앞에 앉아 뒤적였다. 아직 두 장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조월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고, 뒤이어 멍해졌다. “강리? 나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조월! 내 말을 좀 들어보렴……” 강리는 정거한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 조월은 뒤돌아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고, 등으로 눌러 버티며 악담을 퍼부었다. “무슨 말? 당신한테 말했잖아..

7장

“한가하여 미친 것도 아닌데 제자를 거두다니?”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극도로 긴박한 순간, 높은 단상 위에 있던 척조석이 무대의 한가운데서 나타났다. 10여 장의 거리를 축지한 그의 발아래에는 먼지가 일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서 있었던 것처럼.척조석이 손을 풀자 장검이 떨어졌다.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위가는 깜짝 놀라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서로 한 번 겨룰 뿐인데, 왜 이리 살벌한 건지.” 웃고 있던 척조석은 강리가 여전히 굳건하게 설 수 있는 것을 보고 손을 거두었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위민은 재빠르게 높은 단상에서 내려와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에 척조석은 느릿느릿 강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 물었다. “충분히 떠들었느냐?”위민..

6장

아직 끝나지 않았어.뒤이어 출전한 일곱명은 남김없이 패했다.경악하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오래 보고 있으니 점차 실마리가 잡혔다.이 맑고 서늘하며 과묵한 소년은 결코 뛰어난 공적을 지니지 않았다. 그의 검술은 전혀 상반되게도 평범하고 변화가 적었는데, 거의 모든 것이 가장 속되며 직접적인 수법을 띄고 있었다. 찌르기, 베기, 자르기, 가르기, 검을 익힌 모든 이들이 처음에 갈고닦은 기초는 그의 손에서 모두 나타났다. 다만 그는 대응이 매우 빠르고 몸놀림이 가볍고 민첩하여 매번 상대방의 계략을 간파해 냈고, 허점을 잡으면 일거에 격파했다. 이에 상대방은 어찌 된 영문인지 순식간에 막아낼 힘을 잃었고, 무기는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무대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어떤 사람이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아무도 ..

5장

귀운산장의 강? 결국 척조석은 설락을 따라 신예 시합에 나타났다. 거절할 수 없었고, 아무리 그래도 주인집의 체면을 깎기란 어려웠다. 단지 설락이 상습적으로 일찍 도착하자 가복들을 그들을 극진히 대접해 높은 단상에 앉게 하였다. 척조석이 눈을 내리깔고 보니 주위와 옆의 몇몇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연무장의 무대 옆으로 몇 무리의 사람들이 모래밭에 흩어져 있는 개미처럼 드문드문 모여 있을 뿐이었다. 아침 햇살이 어슴푸레 내리자, 척조석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졸린 눈을 겨우 뜨곤 설락과 연을 끊을지 생각했다. 설락은 미안해하며 웃었다. “다음부터는 일찍 부르지 않겠네. 시간이 아직 이르니, 우선 선잠을 좀 자보는 것이 어떤가?” “됐어.” 척조석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손을 내저으며 겨우 정신을 ..

4장

4장. 어린 형제는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척조석은 월동문을 나서면 멀지 않은 곳에서 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을 힐끗 보았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 십 년 동안 노교주를 위해 ‘장생결’의 행방을 찾아 헤맸는데, 보아하니 천문파는 확실히 이번에 치욕을 씻을 기회를 놓치고 나면 이후로는 그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질까 매우 염려하는 것 같았다. 저쪽의 두 사람도 곧 그를 보게 되었다. 두형은 맹사범의 손을 뿌리치고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가 언성을 높였다. “천문파 두형, 특별히 당신께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표현은 정중하나 그 말투는 분명히 원한을 찾는 것이다. 척조석은 흥미 없어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내가 여기 있으면 평안하지 못할 것 같군요?” “척 대협께서는 십 년을 머리를 움츠..

3장

3장. 너……설마 벙어리는 아니겠지? 해가 점차 서쪽으로 기울자, 하늘가에 아름다운 노을빛이 피어올랐다. 잔광이 정문에 높이 걸린 현판 위에 비스듬히 떨어지자 검은 바탕에 금을 입힌 ‘집의장’ 세 글자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아름다운 소녀는 석양 속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현판을 바라보다가 돌아서 옆문으로 향했다. 이때 문 앞은 텅 비었고, 손님이 이미 줄어들어 안내를 맡았던 가복 몇 명은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다. 옆문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전부 없어져 작은 탁자 뒤의 명부를 작성하던 노인만이 남았다. 노인은 붓을 한쪽에 내려두고 명부를 닫았는데, 그 역시 일어나 문으로 들어설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잠깐만요, 기다려주세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고, 소녀는 탁자 뒤에 서며 급히 말했다. “..

2장.

척조석, ‘일검파천문’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동정 사람들은 모두 위민이 갑부 일방의 호상일 뿐만 아니라 강호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듣자 하니, 그의 조상에서도 한때 명망 있는 협객이 나왔다고는 하나, 안타깝게도 훗날 여러 세대는 전부 만족스럽지 못했다. 위민 본인을 비롯해 마보도 안정적이지 못해 무공을 익힐 재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았는데, 아들에게 희망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낙후된 협객을 맞이하며 크게 손을 써서 장원의 이름을 ‘집의장(聚义庄)’으로 바꾸었는데 대단히 호방했다. 집의장은 도시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면적이 꽤 넓었다.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루며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널리 맞이하고 있다. 명검대회의 날이 다가오고 있어 더욱 시끌벅적했다. 장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