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보국 작전처장입니다.”
심문실 안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네 개의 벽은 텅 비었고, 전등 불빛이 정중앙 의자에 앉은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발목은 족쇄에 묶였고, 손목 또한 양옆 팔걸이에 단단히 수갑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등받이에 기댄 채 비교적 느슨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군복 안의 흰 셔츠는 몸에 바짝 달라붙어 다소 얇아 보였다. 눈부신 조명이 셔츠 위로 하얗게 내려앉으며, 안색을 더욱 창백하게 드러냈다.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반쯤 눈꺼풀을 내린 채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긴 머리카락이 쇄골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의자 맞은편에는 긴 탁자 하나만이 놓여있었고, 그 뒤로는 제복을 입은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지쳐 눈이 풀려있었고, 정신도 흐트러져 있었다. 맨 오른편의 젊은 심문관은 졸음에 못 이겨 고개를 떨구더니, 깜짝 놀라 깨서는 엉겁결에 탁자 옆의 경고음 버튼을 눌렀다. “스추(时秋) 상교, 질문에 집중해 주십시오!”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경고음이 밀폐된 취조실 내부에서 울려퍼졌다. 이는 피로에 지친 모두의 신경을 더더욱 괴롭혔다. 가운데 앉은, 구레나룻을 기른 남자가 심문관의 팔을 눌렀다.
스추 또한 불편했는지 인상을 찌푸렸으나, 시선을 들지는 않았다.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질문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심문관은 고개를 숙여 심문 개요서를 확인했다.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어와 있었고, 또 한 번의 심문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전 답변 중 거짓이 있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당신은 본인의 답변에 따를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책임질 의향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추는 심지어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건넸다.
심문관은 절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더는 따질 기력조차 없었다.
심문은 꼬박 닷새째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심문조는 두 팀으로 나뉘어 교대로 임했고, 그마저도 이제는 버티지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 앞의 이 남자는 한순간도 쉬지 못하고 온갖 심문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농담을 건넬 수 있었다.
심문관은 가운데 앉은 상관을 슬쩍 바라봤다. 보안국 기밀처장 루펑(卢鹏)이었다.
루펑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시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심문관은 무감각하게 질문지를 다시 첫 페이지로 넘기고, 컵을 잡아 물을 벌컥 들이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스추 상교, 귀하의 정확한 직책은 무엇입니까?”
탁자 왼편에 앉은 기록원도 피곤한 듯 얼굴을 문지르고는 새 종이 뭉치를 꺼냈다. 앞서 작성된 수십 장의 기록을 첫 장부터 착착 넘기며 순서대로 펼쳐놓고,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스추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대답했다. “군사정보국 작전처장입니다.”
“그 외 다른 직책을 겸하고 있거나, 국장으로부터 비밀리에 임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닝자오(宁昭)는 어떤 인물입니까?”
“군사정보국 작전처 소속 요원으로, 주로 저격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저의 부관이자, 전 남편입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루펑은 눈을 뜨고 그의 창백하고도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했다. 흐트러진 앞머리가 내려와 눈꺼풀을 가렸지만, 강한 조명으로 인해 그의 표정과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는 이미 전사했습니다.” 스추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기록원은 실망스러운 듯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루펑은 그의 팔을 툭 치며 기록을 계속하라 지시했다. 그는 직접 심문에 나섰다. “어째서 닝자오를 죽은 남편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까?” 1
“그건 그저 시간 선후의 문제입니다.” 스추가 말했다. “그가 전사한 건 우리가 이혼한 이후였습니다.”
“왜 이혼했습니까?”
“그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루 처장.” 스추는 말했다. “마치 당신의 결혼생활은 매우 평온한 것처럼 들리는군요.”
루펑은 반응하지 않았다. “당신들의 이혼은 매우 갑작스러웠습니다.”
“더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없을 때, 아내와 총을 겨누며 싸우는 것보다는, 한밤중에 이혼을 요구한 제 행동이 훨씬 정상적이고 절제된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루펑의 얼굴의 울그락푸르락해졌다. 양옆의 부하들은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며, 상사의 사생활을 못 들은 척했다.
“이혼 후 당신은 닝자오를 제7군에 차출했습니다.” 루펑이 말했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스추는 태연하게 말했다. “제가 권력을 남용했다는 겁니까?”
“최정예 저격수가 전장에 투입되자마자 전사했는데, 그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당신은 제가 그 당시 남방으로 향한 이유를 모르십니까? 게다가 보안국 측에서도 사람을 파견해 조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사망 보고서에 서명까지 했습니다. 혹시 그들이 당신에게 보고하는 것을 잊은 거 아닙니까?”
“되묻는 방식으로 회피하지 마십시오. 제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세요!” 루펑이 소리쳤다.
“좋습니다. 사망 보고서에 이미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니,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혼의 여파로 닝자오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고, 집중력이 저하됐습니다. 이는 여러 전우들이 증언했고, 일부는 그의 실력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전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스추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죽게 된 건 제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루펑은 그 말 속에 감춰진 감정을 눈치챘다. “당신은 닝자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스추는 차게 웃었다.
루펑의 정신이 번뜩였다. 다년간의 심문으로 다져진 감각이 그에게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쿵, 쿵, 쿵.”
무거운 철문이 세 번 울렸다. 루펑은 즉시 말을 멈추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회중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각으로, 교대 시간인 여덞 시에는 한참 못 미친다. 심문실은 정보국 청사 지하에 있어 허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장소였다.
“네가 가 봐라.”
기록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철문에 걸린 사슬을 하나씩 풀었다. 뒤이어 문을 살짝 열어 바깥을 살폈다. 그리고는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국장님!”
철문이 완전히 열리자, 복도에는 짙은 빛깔의 장포를 걸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위엄 있는 얼굴, 정보국 국장 우칭야(武青崖)였다. 그의 뒤에는 남색 양복을 입은 청년이 조심스럽게 작은 금속 상자를 들고 뒤따르고 있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루펑은 서둘러 마중을 나갔다.
우칭야는 턱을 살짝 치켜올렸고, 루펑은 고개를 끄떡이며 기록원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철문을 닫았다. 밝게 빛나는 지하 복도에는 이제 세 사람만 남았다.
“심문은 어떤가?” 우칭야가 느릿하게 물었다.
“진전이 있습니다.” 루펑의 눈은 피로 탓에 충혈되어 있었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최정예 요원도 피로심문은 버티지 못하는군요. 스추의 자제력은 눈에 띄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번 심문 시작 전엔 스스로를 진정시켜려 십호흡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초조함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저를 자극하고 있지만, 그건 한계에 다다른 정신력으로 인한 발악에 불과합니다. 많아야 하루, 하룻밤이면 그는 완전히 무너질 겁니다!”
“잘했네.” 우칭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여섯 시간 전, 저우홍(周鸿)이 극비 임무를 스추에게 맡겨야 한다며 직접 보증에 나섰다. 이미 내각 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갔고, 날이 밝자마자 명령이 하달되면 우리는 그를 풀어줘야 할 수도 있다네.”
루펑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겁니까?”
“비상 시기엔 비상 수단을 써야하는 법.” 우칭야는 뒤에 서 있던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개하지, 훠웨이닝(霍维宁). 골로(戈洛) 제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의학박사지.”
훠웨이닝은 루펑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금속 상자를 한 손에 올려두고, 다른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주사기 하나와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관이 있었다.
루펑은 곧 상황을 이해하고, 몸을 돌려 철문을 다시 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상자는 긴 탁자 위에 놓였다. 심문관은 일어나 자리를 비켰고, 기록원은 새로운 종이를 꺼내 정신을 집중했다.
유리관 속 액체는 조심스럽게 주사기에 담겼다. 훠웨이닝은 스추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 남자가 여전히 의식이 또렷하다는 걸 느꼈고, 더욱 신중하게 손을 뻗어 그의 긴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겼다. 그리고 옆목의 동맥을 찾았다.
그의 예상과 다르게 스추는 무의미한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피곤한 눈을 살짝 뜨고, 냉담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스추의 눈꼬리에 드리운 그림자가 옅은 먹처럼 번지자, 훠웨이닝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주사기를 쥔 손을 떨었다.
“서둘러!” 루펑이 다그쳤다.
훠웨이닝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주삿바늘을 혈관에 찔러 넣었다. 투명한 액체가 천천히 몸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스추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고, 이를 악물며 입 안에 숨겨둔 캡슐을 깨물었다. 환각제가 담긴 가루가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어느 쪽의 약효가 먼저였는지 알 수 없다. 그의 흐릿했던 시야는 곧 일그러졌고, 곧 심문하는 말소리는 점점 멀어지며, 혈관을 타고 퍼지는 울림에 덮였다. 밀폐된 심문실이 사라지더니, 폭풍이 밀려들었다. 여름밤의 무더운 바람, 총성과 흩뿌려진 술, 비명 속의 울부짖음과 애원, 격렬한 말다툼과 끝없는 여운……
수많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수많은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고 사라졌다. 그의 혼란스러운 감각은 이같은 격렬한 물살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속이 뜨겁게 뒤집히며 구토감이 일었다. 그는 괴로운 듯 몸을 웅크리며 발버둥쳤지만, 사슬에 묶인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귓가에 대고 반복해서 추궁했지만, 그는 똑똑히 들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논쟁하는 소리는 더욱 또렷해졌다. 이는 깊은 밤 주택 내부에 메아리쳤으며, 시계 바늘이 째깍째깍 움직였다. 흐릿한 사람의 그림자가 거리를 좁혔고, 뒤이어 멀어졌다. 그림자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돌아온 것은 숨이 막히는 침묵뿐이었다.
불현듯,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떨림을 참지 못했다. 막으려 했으나, 묶여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지만, 입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림자가 선명해지며 온화함을 담은 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는 슬픔이 어려있었다.
“당신은 그저, 내가 필요하지 않았던 거야.”
———
작가는 할 말이 있다:
스 처장의 긴 머리가 잘 상상되지 않는 분들은 제 웨이보에 가시면, 고정된 게시물에 인물 설정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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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亡夫;망부. 죽은 남편을 뜻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