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곧 통과하게 될 해역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꼽히는 유명해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커다란 그림 두 점을 귀빈칸 응접실로 옮겨 일렬로 펼쳐놓았다.
왼쪽 그림은 최신판 세계 지도였다. 네 개의 광활한 대륙이 서로를 에워싸고 있었고, 중앙에는 검푸른 바다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대륙 사람들은 그것을 ‘유명해(幽冥海)’라고 불렀고, 서대륙에서는 ‘포바이런해(佛拜伦海)’라 불렀다. 이 두 이름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출입이 금지된 죽음의 바다.’
오른쪽에는 창룡호의 평면도가 펼쳐져 있었다. 하얀 선으로 정교하게 윤곽을 잡아 선체 구조를 층층이 분해해 놓은 도면은 복잡하고도 정밀해 보였고, 동시에 간결하고 명확했다. 단지 설명을 위한 용도일 뿐인데도 철제 기계가 지닌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시선 대부분이 설계도에 끌려갔다.
스추는 시선을 옮겨 옆자리에 앉아 있는 부녀를 눈여겨보았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레이스가 겹겹이 달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만 머리는 단정히 하나로 묶은 것에 반해, 큼직한 나비핀 하나만 꽂아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세계 지도를 보자마자 신이 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빠, 봐봐! 나 이 지도 얼마 전에 배웠어! 글자도 다 읽을 수 있어!”
“그래? 벌써 그렇게 똑똑해졌어?”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는 서른을 갓 넘긴 듯 보였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꽤나 묵직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짙은 색의 정장은 눈에 띄진 않아도 은근한 품위가 느껴졌다.
“그럼! 같이 배운 노래도 다 외웠는 걸.”
아이는 조그맣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은 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증기선의 탄생이 서대륙에 대항해 시대를 가져왔네.
그들은 남쪽으로 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땅을 만났어.
그곳엔 금이 묻혀 있었고,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었지.
그들은 북쪽으로 가, 얼음과 눈에 덮인 땅을 만났어.
그곳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산과 강은 고요하기만 했지.
그들은 결심했어, 동쪽으로 나아가자. 유명해를 넘어가자.
폭풍이 몰아치고,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자,
그들은 결심했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수하자.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만났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국, 가장 오래된 문명을,
그날 이후로 세상은 이어졌네.”
남자는 그녀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가 자랑스럽게 미소 지으려는 찰나, 옆에서 가벼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아이는 부끄러웠는지 아빠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몸을 움츠렸다. 몇 번을 비비고 나자, 결국 한쪽 눈만 살짝 뜨고는 스추를 힐끗 훔쳐보았다.
스추는 손을 내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딸, 정말 귀엽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방해가 되셨을까요.” 남자가 말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 어린 미소를 띠고 있었다.
린나도 연달아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희도 그저 잡담을 나눴을 뿐이라.”
스추는 살짝 몸을 기울여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이어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작은 친구, 머리 좀 땋아줘도 괜찮겠니?”
“정말요?” 아이는 얼굴을 들며 기뻐했다. “머리 땋을 줄 아세요?”
스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어깨에 드리운 긴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걸 본 아이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 어린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다녀오렴.”
아이는 스추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두 손을 어색하게 모았고, 뒤늦게 쑥스러움이 밀려온 듯 작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어……?”
스추의 아름다운 얼굴과 남성임이 분명한 목소리를 마주하자,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저씨1라고 부르면 된단다.” 남자가 뒤에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천만에.” 스추는 대답하며 장갑을 벗었다. 그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풀어헤쳤고, 손가락으로 엉킨 머리를 천천히 빗어냈다. 그런 다음 양옆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나눠 잡고는, 결을 따라 곱게 땋아 내렸다. 손끝에서 예쁘게 땋아진 머리카락이 점차 모양을 갖춰갔다.
옆자리의 훠웨이닝은 얼떨떨했다. 눈앞에 펼쳐진 다정한 풍경이 너무나도 생경했기에,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린나도 참지 못하고 자오징윈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사람, 진짜 정체는 딸을 둔 아빠 아닐까요? 아니면 저렇게 다정할 수 없어요.”
자오징윈은 스추의 몰입한 옆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스추가 곁눈질로 그를 흘끗 보았다.
자오징윈은 재빨리 웃음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응접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감색 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새겨진 얼굴에, 모자 챙 아래로는 희끗희끗한 옆머리가 드러났다. 그는 두 폭의 커다란 그림 앞에 멈춰 서더니,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는 창룡호의 선장 양용타오(杨勇涛)입니다. 앞으로의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스추는 이미 아이의 머리를 뒤로 말아올려 리본으로 단단히 고정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길고 가느다란 목선과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이는 마치 작은 백조처럼 우아해 보였다. 그가 작은 소리로 일렀다. “다 됐습니다.”
아이는 황급히 자수가 놓인 작은 어깨 가방2을 열고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거울을 보자마자 작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고개를 돌려가며 자신의 머리를 살폈다. 그러다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 집 하녀3들이 해준 머리보다 백 배는 예뻐요!”
“쉿.” 스추는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댔다.
“앗!” 아이는 얼른 입을 틀어막고는, 다시 작게 “고맙습니다, 아저씨”라고 말한 뒤, 신난 얼굴로 아빠의 품에 달려가 자신의 새로운 머리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스추는 허리를 곧게 펴고, 다시 선장에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에 계신 많은 승객 여러분께서는 이미 이번 항해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안내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지금 금사 부두에서 출발해, 앞으로 일주일 간의 항해를 거쳐 엘란티스 왕국의 수도 사페르(萨费尔)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최종 정박지는 가장 유명한 항구인 빅토리아(维多利亚)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곧 통과하게 될 해역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꼽히는 유명해입니다. 이 해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암초가 숨어 있습니다. 비록 수많은 선대들의 희생으로 비교적 안전한 항로가 개척되었지만,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의 뇌우(雷雨) 지대를 지나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언제든지 광풍과 거센 파도, 심지어 폭풍우와 낙뢰까지 마주칠 수 있으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자기장 이상으로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는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시 마십시오. 저희 선원들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해,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부디 집중해서 잘 들어주시고,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장은 가늘고 기다란 지휘봉을 건네받아, 창룡호의 평면도 위를 짚으며 설명했다.
“구명정은 최상층 갑판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앙 계단과 앞뒤 두 곳의 작은 계단을 통해 모두 최상층으로 바로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단, 구명정을 임의로 사용하지 말아 주시고, 하선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는 반드시 저희 선원의 지시에 따라 판단해 주십시오.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일지라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넓은 바다 위에서, 기선 자체가 가장 안전한 구명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음으로 주의해주셔야 할 점은 평면도에 표시된 비상 집합 지점입니다. 각 갑판의 출입문 옆에는 해당 층의 평면도와 집합 지점이 표기되어 있으며, 여러분 객실 문 안쪽에도 동일한 안내가 있습니다. 비상 경보음이 울릴 경우,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가장 가까운 비상 집합 지점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장은 응접실 안의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매 항해는 우리와 유명해 사이의 생사를 건 사투입니다. 저희 모든 선원을 대표하여 말씀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항해에 순풍이 함께하길!”
“순풍이 함께하길!”
아래쪽에서 산발적인 박수가 잇따르자, 선장은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귀빈칸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선원들은 두 점의 거대한 그림을 바삐 걷어내기 시작했고, 승객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뿔뿔이 흩어졌다.
자오징윈은 두 걸음 뒤쳐지며 팡위를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아까 위 도련님에게 말을 건 그 부녀, 너도 봤지?”
“봤어요.”
“그 아버지 신원 좀 알아봐. 가능하면 내일 아침까지 결과 주고.”
“이렇게 급하게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팡위가 물었다.
“그 사람은 의미 없는 짓은 안 하니까.” 자오징윈이 말했다. “그 아이 드레스는 정성 들여 입었는데, 머리는 대충 묶었더라. 엄마는 곁에 없는 것 같고, 하녀도 없이 아버지가 혼자 챙기고 있는 거지. 그래도 묶은 머리에 나비 리본을 달고, 손거울도 갖고 다니는 걸 보면 꾸미는 걸 좋아하는 아이야. 오늘 위 도련님이 머리를 예쁘게 땋아줬으니, 내일쯤 되면 아버지가 묶어준 머리는 성에 안 찰 거고. 분명 그를 찾아오겠지.”
“그런 거였군요.” 팡위가 비로소 눈치를 챈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가는 스추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감탄을 내뱉었다. “그래서 일부러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접촉하고, 무심한 척 행동한 거였네요. 다음에 다시 다가와도 자기 쪽이 먼저 나선 셈이 되니까, 계획적으로 접근했다며 의심할 틈이 없겠는데요.”
“딱 그거야.” 자오징윈이 말했다.
“그가 노리는 대상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이번 여정의 목적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 그 부녀와 다시 마주칠 시간은 늦어도 내일 점심 전일 거야. 그 전에 신원을 확인해야 우리도 대응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알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말을 나누는 사이, 그들은 이미 귀빈칸의 본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천장과 벽면은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긴 식탁 위엔 잔과 접시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악단이 들려주는 유려한 선율 속에서, 웨이터들은 이미 분주히 요리를 내오고 있었다.
그들은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마침 옆 테이블에서는 승객들이 한창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렀는지, 갑작스레 놀라움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그렇게 아띨했단 말이에요?”
“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양 선장 말씀이 좀 과장된 줄 알았어요. 해마다 수많은 배가 오가는 항로인데, 정말 그렇게까지 위험한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이 항로가 개척된 지 백 년이 넘었다는 걸 떠올려보세요. 조선 기술을 그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창룡호는 무려 사만 톤급을 넘겼고요. 그런데도 왜 매년 실종되거나 침몰하는 배들이 끊이질 않을까요. 심지어 이젠 사람들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요. 수년 간 유명해를 오간 이들 가운데, 열 명 중 한 명은 목숨을 잃는다고요. 그건 유명해에 바친 통행세래요.”
“잠깐, 딴 소리 말아요! 그래서 그 다음은요? 나침반도 자침도 전부 먹통이었다면서요? 대체 어떻게 폭풍우를 빠져나온 거래요?”
“신의 가호였죠. 우리가 폭풍을 뚫고 나온 게 아니라, 폭풍이 우리를 비껴간 거예요. 번개와 천둥은 거짓말처럼 그쳤고, 먹구름이 걷혔어요. 심지어 밤하늘의 별까지 보이더라니까요. 별자리 덕분에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정말 끔찍하네요. 제 입장이었으면 그 뒤로는 감히 배에 오르지 못했을 거예요.”
“어쩌겠어요, 장사는 이어나가야 하니까요. 하루빨리 증기 비행선이 완성되기만을 바랄 뿐이죠. 그러면 우리도 구름 위로 날아올라 유명해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 테니까요.”
“증기 비행기와 비행선은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요? 제가 본 신문엔 엘란티스 전장에 투입되는 비행기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던데요. 골로 제국도 전세를 뒤집기 위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고요.”
그렇게 그 테이블의 화제는 점점 서대륙의 전쟁 이야기로 흘러갔다.
저녁 식사는 금세 모두 차려졌다. 와인병을 받쳐 든 웨이터가 화이트와인의 산지와 풍미를 설명하며 잔마다 조심스럽게 따라주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린나는 여전히 조금씩 신분을 떠보는 말을 이어갔다. “위 도련님, 이번이 첫 장거리 여행이라고 하셨죠? 전혀 그렇게 안 보이세요.”
“좀 더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티를 낼 걸 그랬나요?” 스추는 웃으며 되물었다.
린나는 마치 속마음이 다 드러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증기선은 여러 번 타봤는데 이번에 창룡호에 오르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왔거든요. 그런데 위 도련님 훨씬 더 세상 일에 익숙하고 침착해 보이세요. 병치레로 집에만 있었다는 사람 같지는 않아서요.”
“창룡호의 첫 항해 당시 실린 신문 기사는 전부 읽어봤어요. 그 덕분에 이 항해선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아는 편이지요.” 스추가 말했다. “오랫동안 집에서 요양하긴 했지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 건 아니니까요. 서재에는 책과 신문이 넘쳐났고, 읽다 보니 자연히 세상 일에도 밝아지게 됐어요.”
“저도 매일 다양한 신문을 봅니다.” 자오징윈이 느닷없이 말을 받았다. “제 스승님이 일러주신 습관이에요. 세상에 드러난 정보는 많다며, 다만 그것들을 알아차릴 눈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스승님?” 팡위가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당신을 길러낸 분 말인가요? 왜 지금껏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겁니까?”
“그가 날 내쫓았거든.” 자오징윈은 여전히 스추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마 내가 나중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야. 순종적이지 않아서겠지.”
스추의 눈빛은 평온했고, 심지어는 온화해 보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면, 자오 선생이 마음에 담아두실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 한창이신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지 않습니까.”
“확실히, 살아갈 날이 더 많아요.” 자오징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돌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최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짤막한 기사가 하나 났던데, 위 도련님께서는 혹시 보셨습니까?”
“뭔가요?”
“국방부 측 소식에 의하면, 군사정보국이 현재 감찰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훠웨이닝은 젓가락을 멈추고, 조용히 스추를 곁눈질했다.
자오징윈 역시 그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만났던 날 신문 말씀이신가요?” 스추는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 “봤습니다. 다만 저는 정치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그날의 1면은 엘란티스 왕국의 증기 비행기였죠. 저는 그 기사에 언급된 증기 비행선 쪽이 더 흥미롭던데. 수술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면, 비행선을 타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렇게 빠르진 않을 겁니다.” 양샤오산이 탕수갈비를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증기 비행기와 비행선은 애초에 기술 난이도부터가 다르거든요. 하늘을 뜬다고 다 되는 게 아니예요.”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스추는 제법 흥미를 느낀 듯 물었다.
“비유하자면, 증기 비행기는 막 걷기 시작한 아이고, 증기 비행선은 달리기 시합이에요. 게다가 목표가 유명해를 건너는 것이라면, 그건 장거리 달리기고요.”
“그럼 당신이 보기엔, 증기 비행선이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스추가 물었다.
양샤오산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빠르면 삼 년에서 오 년은 걸릴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작년에야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지금은 아마 개념 설계 단계에 있을 거예요. 증기 엔진만 해도 큰 문제인데, 구름 위로 날기 위한 충분한 동력을 얻으려면 많은 석탄을 태워야 하거든요. 보일러의 냉각 시스템을 제외하더라도, 연료 무게만으로도 이미 이륙 기준을 초과하죠.”
“필요한 동력이 커질수록, 그만큼 무게도 더 무거워져서 이륙이 더 어려워진다는 겁니까?” 훠웨이닝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런 모순은 증기 비행선이 실현 불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째서 불가능하단 거죠?” 양샤오산이 말했다. “방법은 증기 기관의 연소 효율을 높이는 거예요.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 이게 인류가 백 년 넘게 추구해온 목표 아닐까요?”
호웨이닝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양샤오산은 진지하게 말했다. “훠 선생,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기술 발전과 산업 발전의 매력입니다!”
“샤오산, 그만.” 팡위가 그의 팔을 눌렀다.
양샤오산은 한껏 흥분해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그 옛날 현운 황제가 서대륙에 갈 때 타고 간 게 어떤 증기 범선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읍!”
린나가 한 젓가락 가득 전병을 집어 그의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말만 하지 말고, 좀 먹어.”
양샤오산은 억지로 입을 다문 채 뺨을 감싸 쥐고, 전병을 꾸역꾸역 씹었다.
스추는 부드럽게 웃으며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배웠습니다, 양 선생.”
양샤오산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별 말씀을요.”
스추는 냅킨을 들어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고는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식사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화이트와인만 몇 모금 마셨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자오징윈이 눈치채고는 말하려다 말았다.
훠웨이닝도 알아차리고 물었다. “또 식사 안 하시는 겁니까?”
“요즘은 입맛이 좀 없어서요.” 스추는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여러분 편히 드세요. 전 먼저 방으로 가보겠습니다.”
“저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여러분 천천히 드시지요.” 훠웨이닝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스추를 따라갔다.
자오징윈은 스추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세 명의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빅토리아항에 도착하기 전 일주일, 우리의 최우선 임무는 고용주의 진짜 신원과 목적을 파악하는 거야. 이건 다들 동의하지?”
“네.” 세 사람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그럼 임무 배정할게. 지금 우리가 가진 단서는 그 부녀뿐이야. 방우, 내일 아침 그들 신원부터 정확히 확인해. 가능한 한 다른 정보도 최대한 모으고.”
“알겠습니다.” 팡위가 응답했다.
“린나, 다음에 그 여자아이랑 마주치면 같이 놀아줘. 우린 그 사이에 아버지 쪽과 단독으로 이야기 나눌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아이 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가능하면 챙기고.”
“식은 죽 먹기죠. 그 꼬마 꽤 귀엽던데요.” 린나가 당차게 받아쳤다.
“샤오산, 너는 말이지———” 자오징윈이 그의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보며 말했다. “배가 항구에 닿기 전까지 도서실에서 엘란티스어 사전 한 권을 빌려서 제대로 외워. 팡위, 린나, 너희 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번갈아 가며 그를 좀 도와주고.”
팡위와 린나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양샤오산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가 외쳤다. “보스! 왜 하필 저만 외국어예요?”
“지금부터라도 준비 안 하면, 엘란티스에 가서 말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거 아냐.”4
“근데 저 진짜 못 외워요! 그 알파벳들은 저를 알아보지만, 전 그것들을 못 알아본다고요! 제 외국어 실력은 역사보다 더 형편없단 말이에요!”
자오징윈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양샤오산은 재빨리 그의 소매를 붙잡고 애원하는 얼굴로 말했다. “보스, 제발요, 다른 방법 좀 생각해줘요……”
“힘내. 넌 할 수 있어.” 자오징윈이 진심을 담아 격려하며 손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은 여기까지. 난 먼저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다시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앉았다.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네.”
양샤오산은 즉시 표정을 고쳤다. 팡위와 린나도 웃음을 거두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오징윈이 말했다. “고용주 앞에서 내 전처 이야기 꺼내지 마.”
“……”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 전처를 화제로 삼는 것도 금지야.” 자오징윈은 강조했다.
“그럼……” 린나가 슬쩍 떠보듯 말했다. “고용주 앞에서만 아니면, 떠들어도 되는 건가요?”
자오징윈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네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