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 선생, 오늘 눈부시네요. 훠 박사는 완전히 가려졌어요.”
창룡호 항해선은 옥형구에 위치한 금사(金沙)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이 호화롭고도 거대한 배는 세 대의 증기 터빈 1 이 중앙과 좌우의 스쿠르 2를 구동하며, 전체적인 길이가 이백육십구 미터로 삼천 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각종 휴식 시설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어, 마치 움직이는 바다 위의 궁전 같았다. 3
이 배는 제국 조선소의 자랑스러운 역작으로, 전적으로 자국의 설계와 제작에 의해 완성된 첫 번째 초대형 선박이었다. 그 배수량과 속도는 세계 상위권에 들며, 우뚝 솟은 돛대 위에는 화은 제국의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선명한 적색 바탕 위에,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닿은 현조(玄鸟)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나라의 운명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상징이었다. 4
때마침 승선 시간이 되어, 부두는 오가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승객들과 배웅 나온 친지들이 손을 맞잡고 작별을 고했고, 짐꾼들은 그들 사이를 바삐 오가며 물건을 나르는, 전반적으로 소란스럽고 분주한 광경이었다. 그런 와중, 멀지 않은 주점 바깥의 파라솔 그늘 아래엔 한가롭게 앉아 있는 세 사람이 있었다.
팡위와 양샤오산의 맞은편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늘씬했고, 얼굴은 단아하면서도 그 눈짓 손짓에는 은근한 요염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손거울을 들고 물결치는 머릿결을 가다듬으며, 팡위의 설명을 들었다.
바로 이 인물이 흑석공사 소속의 이번 임무에 참여하는 네 번째 인원, 린나였다. 그녀는 막 동북 지방에서 친지를 뵙고 돌아온 길이었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트렁크를 든 채 곧장 부두로 합류하러 온 참이었다.
군부와 연루되어 있다는 말에, 린나는 “딱” 소리를 내며 손거울을 닫고는 팡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지금 서대륙은 온 땅이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잖아. 그런데 군부 사람들이 몰래 엘란티스로 향한다는 거야?”
팡위는 검지를 세워 그녀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였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봐선, 그렇게 보여.”
“그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전쟁에 끼어들려는 건가?”
“설마.” 양샤오산은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턱을 괴고 말했다. “대륙 사이를 유명해(幽冥海)가 가로막고 있는데, 전쟁의 불길이 바다를 넘어 번질 리가 없잖아?” 5
“머릿속에 기술 이론밖에 없는 사람은 생각도 단순한가 보네.” 린나는 그를 흘깃 보며 말했다. “제대로 역사 공부는 해본 적 있어? 시험 때 10점 넘겨본 적이 있긴 해?”
양샤오산은 과감히 항복했다. “그만 뭐라 해요, 린 누나. 알잖아요. 전 글자가 한 줄만 넘어가도 졸음이 쏟아져요.”
“승선하거든 나한테 술 한 잔 사. 그걸로 보충수업료는 퉁치는 걸로 하자.” 린나가 말했다. “현윤 황제의 개혁은 알아?”
“와, 제가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죠. 그걸 모르면 제가 화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럼, 현윤 황제가 바로 그 해에 엘란티스의 릴리안(莉莉安) 여황과 조약을 체결하고, 양국이 동맹을 맺었다는 건 알아? 엘란티스는 우리나라의 개혁에 필요한 공업 기술과 인재 양성을 지원했고, 우리는 엘란티스에 도자기, 비단, 차, 향료 같은 서대륙에서 귀하게 여기는 사치품을 가장 좋은 것으로 제공했지.”
“음음.” 양샤오산은 진지하게 수업을 듣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맹이라는 게 단순히 상호 이익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야. 조약엔 이런 조항도 있었거든. 어느 한쪽이 타국의 공격을 받아 전쟁에 휘말릴 경우, 다른 한쪽은 최선을 다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린나는 팡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엘란티스가 골로 제국과 전쟁을 시작한 게 언제였지?”
“작년 초여름, 서력 929년 5월.” 팡위가 대답했다.
“두 달만 지나면 꼭 1년이야. 그런데 지금도 양국은 대치 중이고, 전쟁이 끝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아. 우리나라는 이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 조약 자체를 없는 셈 치고 있지.” 린나가 덧붙였다. “물론 나는 이런 태도를 지지하지만. 서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전쟁은 결국 세력 다툼일 뿐이니까. 괜히 우리 인력과 자원을 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엘란티스가 설령 이긴다 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거의 없다고.”
팡위가 말했다. “엘란티스 쪽에서 군사 지원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는데. 신당은 조약을 이행하자고 주장했지만, 구당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혔고. 전쟁 때문에 국내 공장들도 여럿 멈춘 상황에서 지원을 내보냈다간 경제가 흔들릴 거란 우려까지 겹쳐 결국 흐지부지 됐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나라와 엘란티스 사이엔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거네.”
팡위는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감탄하듯 말했다. “당시 현윤 황제와 릴리안 여황의 우정이 양국 간의 우호를 이끌었는데, 그래 봤자 벌써 백삼십 년 전 일이니까.”
“팡 참모님, 지금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 봐. 이런 상황에서 군부가 엘란티스로 가는 이유가, 정말 금이 간 사이를 회복하러 가는 걸까요?”
팡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핵심이 아니야. 사장님과 이야기해봤는데, 가장 관건적인 의문점이 그거였어. 군부가 기밀을 그처럼 중요하게 여긴다면, 자기들 사람을 경호로 붙이면 되잖아. 왜 굳이 우리에게 의뢰했을까?”
린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얼굴을 찌푸린 채 골똘히 생각했지만, 뚜렷한 결론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우리 자오 사장님은 어디 가셨대? 이렇게 오래 떠들었는데, 여태 그림자도 안 비추시다니?”
이 틈을 노려 양샤오산이 끼어들었다. “보스는 회사에서 우리랑 같이 안 나왔거든. 집에 다녀온댔어. 멀리 나가야 하니까 아버지께 인사하러 들른 거지.”
바로 그때, 부두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달렸다. 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증기 자동차가 시장에 등장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연료 소모가 많고 주행 거리도 짧아, 장점이라고 해봐야 그저 승차감이 편안하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엘란티스의 귀족과 유명인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 화은 제국은 아직 자동차를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어 모두 배편을 통해 수입해 들여왔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극히 드물었기에, 자동차는 곧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차 문이 열리고, 자오징윈이 성큼성큼 차에서 내려섰다. 그의 등장에 주변에서는 조그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도 훤칠한 체격을 지닌 그였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정갈하게 다림질된 검은색 쓰리피스 정장을 빈틈없이 갖춰 입은 데다, 몸에 꼭 맞는 베스트는 매끈한 허리선을 한층 또렷이 드러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재킷 단추를 채웠고, 그 동작 사이로 소매의 황옥 커프스 단추가 반짝이며 눈길을 끌었다. 6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돌아가 트렁크를 꺼내 들고는 공손히 뒤따랐다. 자오징윈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반쯤 억지로 가방을 받아들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을 향해 팔을 힘차게 흔들고 있는 양샤오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주저 없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전기사는 차 옆에 공손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배웅했다.
막 파라솔 아래에 도착한 자오징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머지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그를 가운데로 몰아세웠다. 이어서 이리저리 훑어보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양샤오산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보스, 오늘 진짜 너무 멋있는데요!”
팡위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등장하지 않으셨으면, 당신이 큰 집안의 도련님인 걸 까맣게 잊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네요.”
린나는 그의 앞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만, 머리에 왁스까지 바른 거예요?”
자오징윈은 그녀의 손을 피하며 변명했다. “조금 바른 거야.”
“알고 지낸 지 이삼 년 됐지만 이렇게 차려입은 걸 처음 보네요.” 양샤오산이 말했다. “보스, 오늘 약속이 있으신가 봐요?”
“아니면 방금 약혼식에서 돌아오신 건가요?” 팡위가 농담을 던졌다.
“이 소매 단추, 어떤 브랜드죠?” 린나가 그의 소매의 황옥 커프스 단추를 쳐다보며 물었다. “제가 얼마나 노력해야 이걸 살 수 있을까요?”
“이건 맞춤 제작한 거야. 이번 임무를 잘 끝내면 장인에게 부탁해서 하나 만들어줄게.” 자오징윈은 대충 답하며, 주변을 살피고는 물었다. “고용주는 아직 안 왔지?”
린나는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황옥 귀걸이 한 쌍을 예약할게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양샤오산이 대답했다. “고용주님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아직 안 왔다고?” 자오징윈은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
“곧 올 겁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팡위가 말했다. “저희 먼저 배에 오르는 건 어떠신가요?”
자오징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각각 트렁크를 들고 부두로 향했다. 그들은 선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승선장을 지나 창룡호의 귀빈칸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넓은 홀이었다. 대부분의 테이블과 의자는 이미 승객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얼굴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담소를 나누었고, 웨이터가 다가와 짐을 받아 방으로 옮겼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 임무의 의뢰인이 응접실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스추와 훠웨이닝 두 사람뿐이었고, 차림새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추는 트렁크를 웨이터에게 건네고, 잔잔한 눈빛을 띤 채 안경 너머로 응접실 안을 둘러보았다.
흑석공사 소속의 네 사람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자오징윈은 몇 걸음에 훠웨이닝 앞까지 다가가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훠 박사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훠웨이닝은 그가 차려입은 것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자오징윈이 눈앞에 다가서자, 큰 키에 기세까지 더해져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괜스레 자신이 한 수 아래인 듯한 기분이 든 그는, 반사적으로 두 걸음 물러서며 손을 내밀어 악수에 응했다. “천만에요.”
자오징윈은 그제야 스추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위 도련님.”
스추는 그의 정장과 넥타이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었다. 그러다 끝내 눈이 마주치자, 옅게 웃으며 말했다. “자오 선생, 오늘 눈부시네요. 훠 박사는 완전히 가려졌어요.”
“과찬이십니다.” 자오징윈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막 연회장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 승선 시간이 빠듯해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오 선생께서 이토록 교제가 활발하실 줄은 몰랐는데. 그런 분을 제가 먼 서대륙까지 모시게 되다니, 참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스추가 말했다.
“사업상 필요한 일이니 괜찮습니다. 당연한 거지요.” 자오징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스추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검은 장갑을 착용한 손가락이 천천히 들어 올려져 자오징윈의 넥타이에 바싹 다가섰다가, 막 닿으려는 순간 멈춰섰다. 자오징윈은 숨결마저 잠시 멎는 듯했다.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 그러나 그 손은 이내 아무렇지 않게 방향을 틀어, 그의 등 뒷편을 가리켰다.
스추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오 선생, 잠깐 비켜주시겠어요? 앉아서 이야기 나눠요.”
자오징윈은 숨을 깊게 들이쉬곤, 다시 한 번 감정을 눌러가며 옆으로 비켜섰다. “위 도련님 먼저 가시죠.”
응접실의 원형 탁자마다 각각 네 개의 소파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여섯 명이 일행이니, 관례상 팡위와 자오징윈이 고용인과 한 자리에 앉는 것이 옳았다. 양샤오산은 눈치껏 옆에 놓인 탁자로 향했지만, 린나가 먼저 스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는, 팡위에게 턱짓을 했다.
팡위는 자오징윈과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저으며 웃고는 양샤오산이 있는 옆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자오징윈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저의 황옥 귀걸이를 위해 노력해보려고요.” 린나가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그를 건드리지 마.” 자오징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린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스추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위 도련님. 저는 흑석공사 소속 린나이고, 본업은 헌터입니다.”
스추는 그녀와 예의 있게 악수했다. “당신은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헌터입니다, 린 아가씨.”
“당신도 제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잘 아첨하는 멋진 남자예요.” 린나는 웃으며 말했다. “위 도련님이 이렇게 잘생기셨는데, 집안에서 질투하는 사람은 없나요?”
자오징윈은 찻잔을 들고, 아무 말 없이 물을 마셨다.
“아쉽게도,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요.” 스추가 말했다. “결국 어떤 아가씨도 심장병 환자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거든요.”
“어떤 여자를 좋아하시나요?” 린나가 물었다.
스추는 부러 자오징윈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말했다. “저는 순종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 자오징윈은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요?” 린나가 물었다.
스추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해요.”
린나: “……”
린나는 얼굴을 두껍게 하고, 그의 말끝에 숨은 의미를 모르는 척하며 정중히 물었다. “위 도련님, 혹시 예를 하나 들어주실 수 없나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여자애가 분명 있었을 텐데요?”
“이 이야기를 하자니 떠오른 건데.” 스추가 갑자기 훠웨이닝을 향해 몸을 틀며 말했다. “훠 박사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나요?”
“예?” 갑자기 지목을 당한 훠웨이닝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저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저, 저는 사랑스러운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마 조금 어색했을 것이다. 훠웨이닝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자오징윈에게 물었다. “당신은요?”
자오징윈이 잠시 멈칫하자, 린나는 호기심을 느끼고는 이어서 물었다. “그렇죠, 말해보세요. 당신의 전처는 사랑스웠나요?”
“……” 자오징윈은 린나를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전처라고요?” 훠웨이닝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자오 사장님이 겨우 스물셋인데 벌써 이혼을 하셨단 겁니까?”
자오징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스추의 웃는 듯 마는 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그의 등을 가시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입을 열려다 잠시 멈추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다른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을까요?”
“네가 또 전처를 언급한다면……”
“웨이터.” 스추가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손짓했다. “이 분에게 차를 좀 따라주세요. 오늘따라 유독 목이 마르신 것 같거든요.”
웨이터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얇고 정교한 자기 재질의 찻주전자를 들고 자오징윈의 곁으로 다가와 이미 비어 있는 찻잔에 홍차를 채워주었다. 7
웨이터의 몸이 시야를 가리자, 린나는 가십에 대한 흥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더는 캐묻지 않았다.
찻잔에 든 찻물 위로 동그란 잔물결이 번졌다. 자오징윈이 스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스추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기가 떠 있었다.
린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려 했다. “위 도련님……”
그 순간, 발밑의 갑판이 한차례 진동하더니 곧이어 배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우———”
기적(汽笛)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삼켰다. 마치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고래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맑은 하늘을 향해 물기둥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8
창룡호 항해선이 곧 출항한다.
- 金沙;금사. 금빛 모래를 뜻한다. [본문으로]
- 轮机;터빈(turbine). 기선의 엔진. ‘유체의 흐름으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하여 회전하는 힘을 얻는 원동기’이다. [본문으로]
- 螺旋桨;스쿠르. 프로펠러 또는 나선 형태의 추진 장치. [본문으로]
- 玄鸟;현조. 제비의 다른 이름을 뜻한다. [본문으로]
- 幽冥;유명. 그윽하고 어둡다는 뜻, 또는 저승을 뜻한다. 유명해(幽冥海)는 ‘어둡고 아득한 바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음. [본문으로]
- 黄宝石;황보석. 황옥(黄玉) 또는 토파즈. 해당 문맥에서는 노란색 토파즈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 细瓷;세자. 상질(표면이 매끄럽고 섬세하며 광택이 도는 재질)의 자기를 뜻한다. [본문으로]
- 汽笛;기적. 증기기관의 압력으로 울리는 경적 소리를 뜻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