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해질 무렵, 강리는 이미 더듬거리며 침상에서 내려왔고, 누운 흔적이 남지 않게 정돈했다. 척조석은 뜰에 없었다. 그는 물을 뿌려 바닥을 쓸던 가복에게 간단히 설명한 후, 자신이 머무는 서원의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누워서 휴양하는 대신, 서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서안 앞에 앉아 뒤적였다. 아직 두 장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조월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고, 뒤이어 멍해졌다. “강리? 나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
“조월! 내 말을 좀 들어보렴……”
강리는 정거한의 모습을 얼핏 보았다. 조월은 뒤돌아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고, 등으로 눌러 버티며 악담을 퍼부었다. “무슨 말? 당신한테 말했잖아. 우리 엄마는 이미 죽었는데 더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남자의 그림자가 문에 닿았다. 등줄기는 더 이상 무대 위에서 그랬듯이 곧게 펴지지 않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나를 탓하고 원망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너희 모녀를 염려하고 있었어……”
“염려? 좋아요. 그럼 서역에서 바로 돌아오지 그랬어요?”
정거한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당신 더 할 말 있어요?” 조월은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을 누가 못 해요? 무슨 소용이 있다고, 듣고 싶지 않아요!”
한참 후, 문 바깥의 사람이 말했다. “강호는 은혜와 도의를 중시하지. 하물며 죽음으로서 부탁한 것을 내가 어찌 저버릴 수 있을까? 이것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월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기왕 골랐으니, 당신의 “협侠”에게 가면 그만입니다. 처녀가 죽든 살든 간섭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정거한은 천천히 손을 들었고, 손은 방문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는 마치 달에 비친 그림자를 만지려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믿든 믿지 않든, 돌아온 후 나는 줄곧 너희들을 찾아다녔다. 다만 아무리 애써봐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 네가 문을 열지 않고, 나를 만나고 싶지 않아 해도 나는 전부 이해할 수 있어. 그동안 나는 비록 네 곁에 있어주지 않았지만, 시시각각 네게서 아버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기괴해요.” 조월은 도리어 웃으며 말했다. “만약 모르는 남자들이 전부 내 앞에 달려와 이런 식으로 말한다고 쳐요. 그걸 내가 한 명씩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니겠죠?”
불현듯 침묵이 찾아왔다.
강리는 검은 그림자가 점차 작아지고, 멀어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석양은 더는 막는 것이 없자 조월에게로 거침없이 쏟아졌다. 따뜻한 빛 속에서 그녀는 다소 낭패한 모습을 보이며, 움직이지 않고 텅 빈 지붕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위에 꽃이 피기라도 한 것처럼.
강리는 결국 입을 열었다. “너……”
“나는 괜찮아!” 그녀가 말을 끊었다.
“좀 앉지 않을래?”
조월은 그제야 멍해졌고,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안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강리는 찻주전자를 들어 그녀에게 한 잔을 따라주었다. 조월은 맑은 차 위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말하기 전의 간극을 기다리지 못했다. 고개를 들자 강리가 이어서 서책을 뒤적이는 것이 보였다.
”이봐!”
강리는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되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기에, 검연쩍어하며 물었다. “너 상처는 좀 어때?”
“괜찮아.”
“오.” 조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무슨 책 봐?”
강리는 서책을 들어 올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동정의 풍토와 사람의 정을 기록한 여행기였다.
“이게 뭐가 재밌다고. 직접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 조월은 중얼거렸다. 옆으로 놓인 책 한 무더기를 훑어보니, 대개 다음과 같다. 경론사부는 없다. 하나같이 각지의 여행 산기이며, 매우 광범위하다. 그녀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강리를 쳐다보았다. “너 여태껏 외출한 적 없지 않아?”
강리의 변화 없이 고요한 얼굴을 했으나 손놀림이 멎었다. 그는 서책을 옆으로 밀어 두고, 조월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조월은 좀 불편했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여서.”
조월은 잠시 침묵했다. 이어서 뼈를 뽑힌 것처럼 서안 위에 엎드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 “강리, 네 아버지는 네게 잘해줘?”
강리는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은 사람됨이 온후한데, 나를 아주 잘 대해주셨어. 내가 글을 익히고 해석하는 건 그분이 직접 가르쳐주신 거야. 종종 늘 내게 밖에서 어떤 식으로 처신하면 좋은지 당부해주시기도 했고.”
“정말 좋네.” 조월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너의 사부님과 함께 명검대회에 오게 된 건, 그가 네가 이름을 날리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아버지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야. 생각건대 살아계실 것 같지는 않아.”
조월은 멍해졌고, 급히 답했다. “미안해, 나는 생각지도 못했어……”
강리는 말했다. “괜찮아.”
침묵이란 자갈이 떨어지며 잔잔한 물결이 퍼졌다. 조월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한참을 비밀리에 발악한 그녀는 겨우 숨을 죽이고 입을 열었다. “너는 알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 이름을 듣고 놀랐다는 걸.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 너 하나뿐이었어.”
“네 이름말이야?”
“사실 내 것이라 할 수 없지만.” 조월은 말했다. “정거한의 패검을 너는 봤지?”
이 일깨움에 강리는 확실히 떠올랐다. 신예의 겨루기 시합 당시 정거한의 허리춤에는 장검이 한 자루 매달려 있었다. 모양도 이름을 떨친 예리한 무기 같았다.
“그의 패검 이름이 조월이야. 차가운 빛이 달을 비춘다는 뜻을 지녔지.”
강리는 조금 멍해졌다. 조월은 웃었는데, 누구를 비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정 대협이 천하에 이름을 떨쳤어. 그가 죽음을 앞둔 친구의 부탁을 위해 서역에 15년을 머문 것을 강호의 누가 모를까. 나는 올해 16살이 되었어. 그 당시 내가 막 태어났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가버려서 이름을 지어줄 겨를도 없었어. 우리 어머니가 밤낮으로 그를 염려해서, 나를 조월이라고 부른 거야.”
“그날부터 어머니는 줄곧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집안의 서쪽으로 난 창을 늘 열어두어야 했어. 한눈에 바깥을 볼 수 있으니까. 후에 가서는 내게 집안의 장식품을 전부 서쪽에 두게 하고 부지런히 닦게 했어. 말하기를 그가 집이 그리울 때 볼 수 있고, 돌아올 때 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걸음을 재촉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조월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얼마 안 가서, 우리 어머니는 병에 걸렸어.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매일같이 침상에 머리를 기댄 채로 서쪽 창 바깥만 바라봤지. 내가 나이를 먹자, 그녀는 장신구를 팔아서 나를 가르칠 사부를 구했고, 내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했어. 정거한의 아이가 어찌 검술을 모를 수 있겠느냐가 그 이유였고.”
“가끔 그녀는 내가 검을 연습하는 걸 보러 오곤 했는데, 나는 그녀가 몰래 한숨 쉬는 걸 들었어. 어째서 사내아이를 낳지 못한 걸까. 계집애는 단지 두 눈만이 아버지를 닮았다면서. 이후로는 어머니의 병환이 점차 심해졌어. 정거한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고. 그녀는 자신이 기다릴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워했고, 나는 사부님께 가서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부탁했어. 남에게 서신을 전해달라며 부탁도 했고. 어찌 되었든 그가 와서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았으면 했거든. 서신을 보냈지만, 날이 바뀌어도 변하는 건 없었어. 나는 장식품을 닦고, 검을 연습했고, 어머니는 서쪽을 바라볼 뿐이었지.”
조월은 문득 멈췄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강리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리는 없었지만, 그가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조금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월은 그를 향해 가까스로 웃음을 지어 보인 뒤에야, 이어서 말했다. “봄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어머니는 갑자기 나를 침상 옆으로 불렀고, 내가 그녀를 안으라고 했어.”
“그게 내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그녀를 안아본 거야. 원래 어머니란 존재는 이런 느낌이구나, 향기롭고 부드러웠지만 따뜻하지는 않더라.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내 눈을 매만지며 말했어. 당신은 왜 아직도 돌아오질 않는 거야. 기러기가 곧 돌아올 텐데, 당신은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나는 침상에 앉은 채 어머니를 안고 서쪽 창을 바라봤어. 달이 지고, 날이 서서히 밝았고. 바람은 밤새 불었는데, 창턱의 녹지 않은 눈이 온 바닥에 날렸어. 우리 어머니도 온몸이 차가웠고, 내가 아무리 꽉 껴안아도 따뜻해지질 않았어.”
강리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다, 그녀에게 제지당했다.
“너 먼저 내 말 좀 끝까지 들어 봐.” 조월은 돌이켜보았다. “그때 나는 당황해서 죽을 지경이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나는 어쩌면 좋지? 정거한이 우리 아버지라고는 하는데, 나는 그가 도대체 둥근지 납작한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는 게 없잖아. 천하가 이렇게 넓은데, 내 집은 어디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 어머니의 침상 옆에서는 울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문턱에 주저앉았어. 나중에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내가 뭐 때문에 울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 사부님이 오셔서 내 눈물을 닦아주셨고, 나는 그렇게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어.”
석양이 마지막 한 줄기 노을빛을 거두며, 하늘과 땅이 불현듯 어두워졌다. 강리가 일어나 등불을 켰다. 조월은 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호탕한 기개만 본다면 찻물이 아닌 독한 술을 들이켜는 것처럼 보였다.
“통쾌해라!” 그녀는 입을 닦으며, 소매로 눈가의 눈물 자국을 슬그머니 문질렀다.
강리는 재차 그녀에게 차를 가득 따라주었다. “연무장에서 너는 줄곧 무대 위를 바라봤어. 너 정말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나는 그를 보고 있었던 게 아냐. 난 위민이라는 악덕 상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똑똑히 보려던 거였어!”
강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언급한 그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3층짜리 작은 건물 있잖아. 내가 사부님이 계신 쪽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봤거든. 정거한의 거처였어.”
조월은 멍해졌고, 잠시 머뭇거렸으나 여전히 입은 굳어 있었다. “난 그 사람 얼굴도 본 적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내 눈이 그와 닮았다길래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면 안 돼?”
“너희 두 사람은 모처럼 상봉했어. 게다가 그가 너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지.” 강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월, 넌 뭐가 두려워?”
“나는……” 그녀는 목이 메었다. 다만 서두르며 황급히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았고, 숨을 골랐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이미 평정을 되찾았다. “사실 나는 다 알았어. 정거한은 강호의 협객이니, 무엇을 그의 은혜와 원한보다 중히 여길 수 있을까? 그래, 당장은 신경 쓰이겠지. 하지만 만약 선택의 여지가 다시 주어진다면, 설마 그가 나를 고를까? 나의 어머니의 마음속은 모두 그 사람이니,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달가울 테지. 근데 나는?”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잖아. 만약 정거한이 나와 그의 생각이 다른 것을 알게 되고, 혹시……혹시라도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강리는 조금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럴 리 없어.”
이 말이 어떻게 느껴진 건지, 조월은 픽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너 말이야,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네.” 그녀는 일어섰다. “말하지 마, 말하지 않아도 돼. 난 이만 방으로 돌아갈게. 내일 보자!”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문을 연 조월은 갑자기 다시 돌아섰다. “강리.”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문틀을 문지르며 떠보듯 물었다. “우리가……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강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곤, 되물었다. “아니면?”
조월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어둠이 그녀의 뒤에 찾아왔다.
은하수가 점차 밝아지더니, 벌레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퍼졌다. 척조석은 처마 끝에 비스듬히 앉은 채 술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희미한 달빛을 삼분 빌려 술을 마시려는데, 갑자기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무심코 한 번 훑어보니, 담장 바깥으로 몇 명의 청년들이 급히 지나갔다. 손에 무엇이 들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도 등롱을 켜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어렴풋이 선두에 선 사람이 위가처럼 보였다.
척조석은 흥미가 다 떨어져서 시선을 거두었다. 1
명검대회를 앞두고 불의검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 밤이 비록 평안하다지만, 정말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승자가 검을 취하는 이런 간단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내일은 필시 피바람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척조석은 머리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술은 땅에 뿌려졌다.
- 意兴阑珊; 의흥란산. 흥미가 다 떨어졌다는 뜻의 성어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