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갑자기 내렸다.
비는 갑자기 내렸다.
깊은 밤 산골짜기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려 무더운 여름 더위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죽림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어두운 밤에 그윽하고 푸르게 흔들렸다.
갑작스런 발자국 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궁지에 몰린듯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뒤는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남자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발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죽림은 산기슭에 자라났는데, 대나무 사이에 가려진 희미한 동굴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기뻐하면서도 소리를 내지 못하고 대나무 그림자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동굴로 들어갔다.
이 죽림은 외지고 인적도 없고 동굴도 은밀해서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느슨해지자, 한 줄기 피로와 갑자기 사지가 뒤섞인 시큰거림이 올라왔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동굴 벽을 짚고 두 걸음 물러났다.
"까득" 하고 발밑에 딱딱한 물건을 걷어찼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는데, 끊어진 마른 나뭇가지였다. 한숨 돌리려던 찰나, 그는 갑자기 발치에 잿더미가 쌓여있고 아직도 많은 마른 나뭇가지가 널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히 마른 장작으로 쓰였을 것이다.
누군가 이곳에 머물렀다.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그는 다시 온몸을 바짝 조이고 조심스럽게 동굴 입구로 갔으나 밖은 여전히 조용했다. 남자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녹초가 되어 눈을 감았다
어두운 밤은 끝이 없고 빗소리는 잔잔했다.
“저를 찾아온 겁니까?”
그는 눈을 부릅뜨고 거의 튕겨 나갔지만, 아쉽게도 발에 힘이 없었다. 온몸이 빗길에 넘어지며 물보라는 사방으로 튀었다.
말을 한 사람은 구멍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죽은 가지로 살짝 잿더미로 걷어차서 밖으로 나왔다.
눈은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고, 희미한 빗줄기를 사이에 두고 남자는 상대를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뜻밖에도 소년 같은 사람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고 얼굴이 창백하며 검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얼굴 옆에 붙어 있었다. 몸매도 약간 여위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애석하게 했다. 단지 두 눈이 맑고 그의 손에 날카로운 칼과 같았다.
“나보다 이 골짜기에 더 익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소년은 그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쳐다보았고 가슴은 격렬하게 기복을 일으켰다. “너는......”
그는 겨우 입을 열자마자 목이 메었고, 검날이 목 앞에 닿았는데, 밤비의 한기와 함께 살갗에 스며들었다.
“오늘 밤은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날이고, 당신이 마지막입니다.”
소년의 목소리는 언제든지 빗소리에 덮일 것 같아서 남자는 입술이 열리는 것을 집중해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밤새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보다 이 수려한 얼굴에 충격을 받아 남자의 머리가 텅 비었다. 목구멍에 닿는 칼날이 은근히 찌르지 않았다면 그는 황당한 꿈이라고 생각할 뻔했다.
필시 악몽이겠지.
저녁에 동료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누구도 나쁜 쪽으로 추측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 골짜기는 전에 다 파악했기 때문에, 명령을 기다리는 십여 명을 제외하고는 오직 날짐승과 짐승만 남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 잃은 사람을 되찾은 후 시원하게 마시려고 좋은 술 몇 단지를 꺼내어 놓고는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얼마 후, 남자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그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눈을 크게 뜬 머리가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만 보였는데, 진홍색의 피가 나무껍질에 스며들어 온 땅의 푸른 풀 위로 흘러내렸다.
뒤이어 간간히 비명 소리가 망망한 산골짜기에서 들려왔다. 때로는 멀고 때로는 지척에 있었다. 핏빛 석양 아래에서 무수한 새들이 놀랐다. 마지막에 밤이 내려와 산골짜기 전체가 고요해져서 남자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고, 무작정 방심할 수 없었는데, 끝내 도망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미지의 무서운 적이 이런 모습인가?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은 그의 반응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물어볼 것이 있는데, 그들은 자백하려 하지 않았으니 당신 차례입니다.”
“누가 당신을 보낸 겁니까?”
“나는……” 남자는 침을 삼켰다.
“우린 귀운산장에 온 지 여러 해가 흘렀어요. 전 장주의 무덤이 골짜기에 있는데, 저를 보세요. 저는 무덤지기입니다. 당신의 이 칼과 검은……”
그는 소년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자 급히 말을 바꾸었다.
“아니, 아닙니다. 뭘 물어보시는지 압니다, 알아요!”
그는 소년의 표정을 헤아리며 마음이 급해졌다. “소협께서는 매우 젊고 무공이 뛰어나신데, 틀림없이 강호의 소문을 듣고 장생결(长生诀)을 찾으러 오신 거죠?”
‘장생결’이라는 세 글자가 나오자 남자는 칼날이 약간 물러나는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그 소년은 비록 표정이 변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점차 거세지면서 얼굴을 내리쳐 희미하게 아팠다. 남자는 대담하게 빗물이 묻은 얼굴로 아첨하며 웃었다. “그건 알아요. 말하자면 찾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면……” 말하면서 몸 가까이 있던 손으로 갑자기 땅바닥에 고여있는 물을 일으키자, 물방울은 힘을 받아 암기처럼 상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남자는 몸을 돌려 도망치며, 회복된 기력을 모두 발에 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장 정도 튀어나왔는데 불쑥 몸이 가벼워지며 가슴에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자 빛이 이미 가슴에서 빠져나온 것을 보았고 피를 한 모금 뿜었다. 남자는 땅에 쓰러져 몇 번 몸부림을 치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이 뒤에 서자 빗물이 검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내었고, 풀밭에 스며들어 살짝 붉어졌다. 그는 꼼짝 하지 않고 서있는데 마치 그 시체를 보는 것 같기도, 또 멍하니 넋을 잃은 것 같기도 했다. 한참 후에 소년이 손을 놓자 장검은 풀밭에 떨어졌다. 그는 느릿느릿 앉아 한참 동안 멍해 있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소년은 눈을 감았는데, 촘촘한 가랑비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마치 씻어낸 백자처럼 보였다.
산골짜기에 빗소리가 졸졸 흐르고 푸른 대나무가 흔들리며 마치 살아있는 숨결이 한가닥도 없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모두들!
그리고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언급해 둡니다.
문안의 마지막 문장을 썼을 땐 생각지도 못했는데, 후에 나카지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직 당신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와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또 확실히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기에, 영향을 받은 가능성을 베재할 수 없어요. 따라서 여기에 성명합니다.
더불어 이 노래는 자세히 음미하면 척조석의 개인 형상화가 될 수 있어요 ㅋㅋㅋㅋ 듣기에도 좋고 의미도 깊으니, 모두에게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