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杯茶/회인怀刃

2장.

丹英 2024. 3. 31. 04:26
척조석, ‘일검파천문’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동정 사람들은 모두 위민이 갑부 일방의 호상일 뿐만 아니라 강호에 심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듣자 하니, 그의 조상에서도 한때 명망 있는 협객이 나왔다고는 하나, 안타깝게도 훗날 여러 세대는 전부 만족스럽지 못했다. 위민 본인을 비롯해 마보[각주:1]도 안정적이지 못해 무공을 익힐 재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았는데, 아들에게 희망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낙후된 협객을 맞이하며 크게 손을 써서 장원의 이름을 ‘집의장(聚义庄)’으로 바꾸었는데 대단히 호방했다.

집의장은 도시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면적이 꽤 넓었다. 지금은 문전성시를 이루며 천하의 영웅호걸들을 널리 맞이하고 있다. 명검대회의 날이 다가오고 있어 더욱 시끌벅적했다.

장내각 위층, 위민은 난간을 짚고 서서 손님이 끊이질 않는 정문을 바라보며 문을 넘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다.

“삼대문파, 청산파, 광금종에서 모두 사람을 보냈군. 귀운산장만 남았다.”

위민이 갑자기 입을 열자 그의 뒤에 서있던 소년이 이렇게 대답했다. “명검대회까지 며칠 남았으니, 아마 곧 도착하지 않을까요.”

“어리석기는.” 위민은 냉소했다. “귀운산장은 당연히 오지 않는다. 그들은 습격을 받아 검을 잃은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는데, 만약 사람을 보낸다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일 아니겠느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의 위엄을 두려워하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위민은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너에게 온 사람의 이름과 문파를 모두 외우라고 했는데, 잘 기억하고 있겠지?”

“기억해요.”

“잘 보아두거라, 이들은 모두 강호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이다.” 위민은 소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위가(魏柯), 잘 들어라. 그들은 내 체면을 보고 온 것이 아니며, 더욱이 너를 위해 온 것도 아니다. 만약, 이번에 그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넌 평생에 다시는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어!” 그의 말투가 무거웠다. “게다가 내 심장을 온통 짓밟게 된다, 알아들었느냐?”

“……알겠어요.” 위가는 작게 대답하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였다.

정문 쪽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자, 위가는 고개를 들고 바라보았다. 두 청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와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위민이 낯빛이 변하여 놀라워했다. “푸른 옷에 은빛 검, 그 설락이라면 그의 옆에는……”

그가 돌아서서 재빨리 아래층으로 달려가자 위가는 급히 따라붙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아버지, 저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몇몇 명문 대문파를 제외하고 위민이 직접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청의를 입은 자의 이름은 설락이다. 사람들은 ‘청의객(青衣客)’이라고 부르지. 네가 들어라, 무공은 그의 성격만큼 좋다." 위민의 시선은 다른 사람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옆에 있는 저 사람은 10년 전에 세상에 이름을 날린 후 행방이 묘연했지. 나도 그 이름만 들었는데, 이번에 뜻밖에도 그를 끌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

"대단하다고요?" 위가는 이 바보 같은 말을 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정신이 없어서인지 위민은 욕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법정에 도착하여 예복을 차려입고 자세로 발걸음을 늦추고 두 청년을 맞이했다.

"두 분이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위민입니다." 위민은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위 장주의 성의를 받듭니다. 설락입니다." 설락은 옆사람을 가리켰다. “여기 이 분은 척조석입니다."

위민의 미소가 깊어졌다. "위 모의 안목이 좋은가 봅니다. 과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았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지요. 두 분의 기개가 비범한 것을 보니 명검대회는 필연적으로 더욱 풍채를 더할 것입니다.”

척조석은 손을 내저었다. "위장주가 오해하셨습니다. 우리 둘은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이니 연무대에는 오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설락도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위민은 얼굴에 한 가닥 의아함을 드러내며, 바로 뒤에 있는 아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위가는 마음속으로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위민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군요. 제가 척 대협과 설 대협의 자주 언급한 탓에 이 아이는 마음이 쏠려 만나 뵙고 식견을 넓힐 후 있기만을 바라 마지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이 이상 무리하지 않으렵니다. 그가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도 흡족할 테지요.”

위가는 순순히 대답했다. “예.”

위민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리지 않고, 가복을 불러 그들 두 사람을 데리고 거처로 향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멀리 떨어진 그 뒷모습으로 쏠렸다.

“척조석, ‘일검파천문[각주:2]’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위가는 멍해있었는데, 그제야 아버지가 그의 이전 질문에 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파천문?”

“천문산은 산세가 험준하여 방어하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데, 마치 천문을 넘을 수 없는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야. 뿐만 아니라 천문파는 지세에 근거한 진법을 설치했지. 자신감은 깨뜨릴 수 없었고 몇 년 동안 확실히 그래왔다. 그러다 십년 전, 설락이 천문파의 제자를 죽인 것으로 오인받아 산에 수감되자, 척조석이 홀로 산을 뚫고 적진을 격파하여 그를 강탈해 갔으니, 검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지 않느냐.”

“그……”

위민은 시선을 거두고 아들의 말을 끊었다. “스승을 모시려는 이상 명문 대파가 좋을 테지만, 문하에는 제자가 무수히 많다. 어찌 절세의 고수를 모시고 독보적인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것에 비할 수 있겠느냐? 너는 이 십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지 못했는지 아느냐?”

위민의 눈빛이 본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위가는 고개를 숙였지만 숨이 막힐 것만 같아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위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되돌아가다가 참지 못하고 척조석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문파 사람들이 며칠 전에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장 내의 동쪽들에 기거하고 있음을 기억했다. 척조석은 ‘일검파천문’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는……천문파와 원수를 맺은 것이 아닌가?

저편에 길을 안내하던 가복이 가까이 서자, 척조석은 설락을 끌고 몇 걸음 뒤쳐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명검대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작은 겨루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지. 알고 보니 위민이 무림 신예들의 솜씨 발휘를 구실 삼은 것이었어. 이 기회를 빌어 자신의 아들이 강호 사람들 앞에 내세워 예봉을 드러내게 하고 앞길을 닦으려고 했나 보군.”

설락은 웃었다. “나는 방금 전에 옆문 밖으로 젊은 협객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봤어. 설령 위 장주가 사심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연무대를 마련해 후발 주자들이 두각을 드러낼 수 있게끔 한 것은 좋은 일이야.”

척조석은 의미모를 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위 장주는 아들을 위해 좋은 스승을 뽑을 생각인데.” 설락이 그를 바라보았다. “너를 점찍어 둔 것 같아. 고려해 볼 생각은 없어?”

척조석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말했다. “내가 한가하여 미친 것도 아닌데 제자를 거두어 기르고 싶겠는가?”

설락이 웃으며 말을 꺼내려는데,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가복이 갑자기 멈췄다. 일행이 앞길을 가로막은 사람의 옷차림을 보니 동문을 나선 사형제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동쪽과 서쪽의 양원을 잇는 석조 아치교로 아래로는 물이 굽이쳐 흘렀다. 다리 면적이 넓지 않은 데다 양측의 사람이 마주 보고 있어 공정하게 길을 틀어막았다고 할 수 있다. 가복이 공손하게 어떤 말을 했지만, 상대방은 듣지 못한 듯 그들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가복을 밀어내고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귀찮네.” 설락의 귓가에 척조석이 낮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청년은 이미 앞에 와서 공수하며 말했다. “천문파 맹사범(孟思凡), 두 분께서는 오래간만인데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이 그다지 나질 않아서.” 척조석은 설락을 힐끗 쳐다보며 얼버무렸다. 그는 사실 한 번 본 것은 잊지 않았다. 방금 한눈에 이 분이 지금의 천문파 대사형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말하기가 쉽지 않지. 기억한다. 그 당시 바로 네가 내 검에 의해 뒤집혔지?

그러나 그의 이런 대답도 분명히 만족스럽지 못했기에, 즉시 누군가가 차게 코웃음 쳤다. 이 제자들은 한창 젊고 극히 경망스러울 나이인데, 천문파는 강호에 놓아두어도 명문 대문파이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교만해졌다. 유일한 결점은 이 ‘일검파천문’의 명성에 눌려 누구도 마음껏 즐길 수 없단 점이다.

“좋습니다. 그때의 일은 언급하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전과는 다릅니다. 삼 일 후, 명검대회에서 우리가 다시 맞붙게 된다면 저는 반드시 당신이 평생 잊을 수 없게 할 겁니다!” 맹사범의 태도는 예의 바르지만 말하는 기세는 결코 작지 않아 뒤에 있는 사제들이 분분히 호응했다.

척조석은 가볍게 웃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은 없죠. 저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이니, 연무대니 명검이니 하는 것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설락도 말했다. “이번 명검대회에 호걸들이 모이면, 틀림없이 더 좋은 적수가 당신들을 기다리게 되겠지요.”

“듣기 좋은 말을 하는데, 설마 너무 비참하게 져서 체면을 잃을까 봐 감히 응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나이가 좀 어린 제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두형(杜衡).” 맹사범은 고개를 내저으며 사제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손짓했다. 두형은 뒤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도발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맹사범은 척조석을 직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연무대에서 내가 이긴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상대라 할 지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설락은 묵묵히 한숨을 내쉬었다. 천문파가 가까스로 한 차례 척조석을 만나 감정이 격앙된 데다, 사람이 많아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리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었고, 교착된 이 순간은 이미 주위의 수많은 눈길을 끌어모았다. 일부 강호를 체험한 이들은 한눈에 상황을 파악하고 흥미진진해하며 관망했다.

맹사범의 언사는 오만방자했지만, 척조석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말꼬리를 늘렸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생하는 것은 좌우 간 저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허나 저는  이미 이 나이가 되어, 정말 연무대 위의 무예 시합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천문파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웠다. 맹사범도 안색이 흉흉해진 채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척 대협께서는 아직 이립도 되지 않으셨습니다. 설사 거절한다고 해도 이렇게 얼버무려서는 안 되겠지요.”

척조석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들은 여기서 긴긴 세월을 떠나보내며 서 있을 작정입니까?”

“저희 사형제들도 할 일이 있는데, 누가 괜히 여기를 막으려는지 모르겠군요.” 두형이 가로채듯 말했다. 일행은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검자루를 움켜쥐고 본격적으로 준비하며 그들 두 사람을 주시했다.

강호의 사람들은 명성과 체면을 의식하여 남에게 조금도 지지 않으려 한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니 조금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옆에 있던 가복은 땀을 줄줄 흘리며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몇 발짝 물러서서 구석으로 움츠러 들었다. 구경꾼들이 기다린 것은 바로 이 검을 빼들고 마주하는 순간으로, 마음이 들떠서 놓칠세라 눈을 크게 떴다.

분위기가 점차 팽팽해지자 맹사범도 손에 검자루를 움켜잡았다. 연무대에서 손을 쓸 수 없으나,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고 해서 한 판 겨루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설락과 척조석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이어서 두 사람은 동시에 한쪽으로 물러나 길을 비켜주었다.

구경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천문파 사람들도 서로를 빰히 쳐다보았다.

설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께 일이 있으신 이상 먼저 나아가주시면 됩니다.”

“당신……” 맹사범은 불현듯 척조석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치우친 고개를 똑바로 하고 이어 손을 들어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마치 솜을 한 대 때리기라도 한 듯, 어디에도 발산할 수 없는 느낌이 답답하다.

더군다나, 강호에서의 경력을 따르면 척조석과 설락은 어쨌거나 그들에게 반 선배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손을 쓰는 것은 별일 아니지만, 상대방이 길을 양보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러서 계속 다툰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매달리는 시정잡배가 될 뿐이다.

맹사범은 뒤에 있는 사제들에게 눈짓을 하며 화를 억누르고 두 사람에게 예를 차려 감사를 표했다. 일행은 그제서야 떠나갔다.

구경꾼들은 크게 실망하며 따라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당시 내가 연루되지 않았더라면, 너도 이런 문제에 얽히지 않았을 텐데.” 설락은 척조석의 옆으로 걸어가서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척조석이 그를 보고 말했다. “너는 그 당시 그들을 이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천문파도 뚫지 못했잖아. 네가 왜 신경 써?”

설락: “……”

  1. 마보(马步):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낮춘 자세, 발을 버티고 서서 싸우려는 자세 [본문으로]
  2. 一剑破天门. 일검파천문. 일검으로 천문을 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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