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杯茶/회인怀刃

1장

丹英 2024. 3. 31. 04:16
이번에도 ‘장생결’의 소식은 없었느냐?



반야교(般若教)의 삼중 주문(朱门) 위로 늘씬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온 몸에 검은 장포를 둘렀는데 머리에 쓴 모자(兜帽)가 낮게 늘어져 거의 어둠 속에 녹아들 것 같았다. 검은 장포를 입은 이는 아무런 방해없이 주홍색 피가 얽힌 반달문을 지나 곧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가끔 야간 순찰을 도는 교인들이 그를 보았지만 그들은 멀찌감치 피했다.

검은 장포를 입은 이는 기개가 드높은 전각 앞에 멈춰섰다. 문밖에는 아름다운 비녀(婢女)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를 보자마자 잇달아 예를 갖춰 인사했다.

“좌호법의 회교를 환영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굳게 닫힌 궁전 문에서 촛불빛이 흘러나왔고, 안에 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것이 명백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시중드는 꾀꼬리와 제비[각주:1]들을 모두 쫓아냈다.

“좌호법께선 잠깐 기다려주세요. 홍노(红奴)가 들어가서 고하겠습니다.” 선두에 선 붉은 옷의 여인이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에게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좋지 않은 때에 왔어요. 소주께서 방금 떠나셨는데, 교주께서는 지금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전에 들어갔고, 검은 장포를 입은 이는 문 밖에서 기다렸다. 옆에 있는 하녀들은 서로 밀치락달치락하며 눈치를 보았는데, 가장 어린 하녀가 소리를 지르며 그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황급히 입을 막고 고개를 숙였다.

이 강호에서 반야교는 신비롭고 괴이한 곳이지만 이 교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은 바로 그녀 곁의 이분이다. 여러 해 동안 아무도 그의 검은 장포 아래가 어떤 모습인지 눈치채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고, 교중에서는 모두 ‘좌호법’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 그는 교중의 사무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고 평소에 더욱 행적이 묘연하여 보기 어려웠다.

온종일 얼굴을 가리는 것은 틀림없이 낯을 들 수 없는 것이다.[각주:2] 지금 당장은 청명한 남자의 음성처럼 들리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는가? 하녀가 속으로 쑥덕이며 몰래 옆을 힐끗 보았는데, 마침 상대방의 훑어보는 시선에 부딪히자 그녀는 재빨리 눈을 돌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뒤늦게 놀랐다.

모자 아래의 그 두 눈은 그녀들의 추측과 전혀 달랐는데, 음산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늦가을이 쏟아지는 햇살처럼 나른하고 평화로웠다.

하녀는 다시 한 번 쳐다보고 싶었지만 전문이 열리고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이 홍노를 따라 들어가자 그림자는 문 뒤로 사라졌다.

전 안은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주인 자리에는 바싹 마른 노인이 앉아있었다. 흉노는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다리를 주물렀다. 그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나서야 전에 서 있는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을 보았다.

“너 이번에는 오래 다녀왔구나.”

“여정이 긴 것을 교주께선 양해해주십시오.”

노교주는 수중의 비단함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갑자기 말했다. “내 영아(影儿)[각주:3]가 죽은 것을, 너는 아느냐?”

검은 장포를 입은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돌아왔을 때 소식을 들었는데, 상심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소주께서 그 늑대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어 작은 공자의 천령을 위로했다고 들었습니다.”

“위로라고?” 노교주는 크게 ‘흥!’하고 콧방뀌를 뀌었다. “그 늑대는 억울하게 죽었다. 배조(裴照) 그 녀석은 왜 그 자신이 죽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야할 늑대다!”

그는 이를 갈았다. “그가 영아에게 술을 강제로 권하고, 뒷산에 던져 산 채로 뜯어먹도록 한 것 아니겠느냐.”

“영아는 열셋 밖에 안 되었는데 그 늑대와 싸울 능력이 있었겠느냐?” 노교주가 비단함을 세게 내리치자 붉은 실에 감긴 산삼 하나가 튀어나와 검은 장포를 입은 이의 발 끝으로 굴러갔다. “좋다, 아주 좋구나! 형제가 모두 죽었으니, 그의 소주 자리는 정말 안정적이다! 일부러 와서 나에게 몸을 돌보라고 했는데, 나도 하루빨리 자리를 내주길 바라는 것 아니겠느냐?”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교주가 또 참지 못하고 한 차례 기침을 하자, 홍노는 즉시 그의 등을 쓸며 숨을 고르게 했다. 그는 진정한 후에 고개를 들었는데, 비록 얼굴은 노쇠했지만 두 눈은 날카로워 검은 옷을 입은 이를 보았다. “배조는 교 전체의 위아래에 나를 감추려 한다. 우습구나! 정말 자신이 대세를 얻은 줄 아는데, 진정 반야교에서 그가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느냐?”

검은 장포를 입은 이는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항상 밖에 있고, 소주와 접촉이 거의 없어서 교주가 말하는 것을 저는 확실히 모릅니다.”

노교주는 여전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검은 장포와 그의 흉부를 찢어 그 말 속의 진위를 자세히 가려내려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이는 더 이상 설명도,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타닥거리는 촛불 소리가 나고, 노교주는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시중드는 홍노를 밀어냈다. “넌 나가라.”

전 안에 그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비로소 노교주는 깊은 소리로  말했다. “척조석(戚朝夕).”

검은 장포를 입은 이는 그제서야 비로소 움직임을 보였다. 그가 손을 들어 모자를 벗자 검은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또, 검은 천으로 된 복면을 벗어 마침내 용모를 드러냈다. 의외로 오랜시간 구설수에 오른 좌호법은 결코 무섭지 않은, 단지, 목소리와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휘황찬란한 촛불이 그의 청준한 옆 얼굴을 비추었다.

“이번에도 ‘장생결’의 소식은 없었느냐?” 노교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다.”

“있더군요, 그런대로 큰 소식입니다.”

“얼른 말해보거라!”

“강록명(江鹿鸣) 전 맹주가 귀운산장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겠지만 소식이 있습니다. 얼마 전 그의 무덤이 습격을 당함으로 무덤을 지키는 사람이 깨끗이 죽고, 그의 불의검(不疑剑)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검에는 장생결의 단어가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척조석이 말했다.

노교주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아서 물었다. “무덤도 찾지 못했는데, 또 무슨 소식이 있지?”

“귀운산장은 20여 년 동안 거의 움직임이 없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수십 명이 비밀리에 파견됐으니 자연히 일이 생겼을 터. 제가 하나 잡아 심문하니, 그가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척조석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소문이 나고 귀운산장이 밤 사이에 그 사람들은 불러 습격한 일을 맹렬히 부인했지만, 제가 회교하기 전에 강호의 사람들은 이미 거의 다 알게 되었습니다. 진위를 가릴 새 없이 소문이 너무 빨리 퍼졌지요. 귀운산장의 강호 지위와 세력도 어찌 그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장생결에 관한 일인데, 누가 꿈틀거리지 않겠느냐? 빈털터리가 될 지 언정 절대 놓치지 마라!“

척조석은 한 번 웃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노교주도 입을 닫은 채 잠시 사색에 잠겼다. 만약 소식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확실히 더는 큰 소식일 수 없다.

세상에 알려져 있는 장생결의 심법을 가진 마지막 사람은 바로 강록명이다. 그는 생전에 3대 문파의 머리인 귀운산장주로, 36년 전에 무림의 정도를 통솔하는 산하맹을 세워 초대 맹주를 맡았다. 그의 무공은 매우 뛰어나서 자연히 그의 몸에 직접 할 생각을 하지 못해 가까스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귀운산장에는 그의 위패만이 있었고, 진정으로 뼈를 묻은 곳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귀운산장에 장생결을 수련하는 사람이 더는 없기에 마치 이 심법이 강록명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며 아득한 연기와 먼지같은 여러 소문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높은 경지, 심지어는 아름다운 시절에 영원히 머물게 해주는 비보심법[각주:4]을 간직한 무학이 어찌 쉬이 잊혀질 수 있겠는가?

이번 소식은 곧이곧대로 찾아갈 수 없는 강록명의 무덤을 가리켜 사람들로 하여금 3할 중 1할은 더 믿게 만들었다. 이미 퍼진 파가 있으니, 반드시 강호에 거센 파도가 일게 될 것이다.

노교주가 입을 열고 물었다. “그 불의검에 대한 소식이 있단 말이냐?”

“있습니다.”

노교주가 의아함을 금치 못하고 그를 보자 척조석은 엷게 웃었다. “저 뿐만 아니라 강호 전체가 소식을 얻었습니다. 다음 달 동정洞庭에서 열리는 명검 대회는 위민(魏敏)이라는 현지의 부유한 상인이 주최한다더군요. 그는 기회와 인연을 통해 거금을 들여 보검을 샀으니 천하의 호걸들을 널리 초청하여 감상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각 문파의 사람들은 아마 동정으로 가고 있을 겁니다.”

상인들이 무림성회를 주최하는 것은 정말 듣도보도 못한 일이다. 강호에는 오만하고 돈과 재산을 얕보는 사람이 많은데, 허나 이번에는 모두 빛을 올렸다.

“위민이 불의검을 얻었다는 건가?”

척조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 “그는 어떤 검인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에, 불의검을 제외하고 아무도 다른 답을 생각해낼 수 없는데 위민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꺼림칙한 일이지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돋궜다.

노교주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잘못 죽일지언정, 가만두지 마라!”

“명을 받듭니다.” 척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호법도 며칠 전에 회교했고, 그 네 명의 당주들도 있으니 필요하면 그들을 시켜 너를 돕게하고 그냥 손을 놓아도 된다.” 노교주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필요 없습니다.” 척조석이 말했다. “저는 혼자 움직이는 게 익숙하니, 그들이 있으면 오히려 제 손발에 방해가 됩니다.”

노교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척조석이 전 바깥으로 나서려는데, 뒤에서 다시 한 번 노교주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몇 년,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으니 더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그는 대답하지 않고 뒤돌아 보지도 않았으며, 칠흑같은 하늘의 굽은 달을 보았다. 달빛은 어슴푸레해지자 그는 소리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사색에 잠겨있다가 붓을 들어 서신 한통을 썼다.

-

보름 후, 이 서신은 동정 백 리 밖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나왔다.

술집은 길가에 붙어있어서 길을 가는 사람들이 늘 멈추어 쉬곤한다. 이 날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막 문을 열었다. 주인은 뒤에서 어제 남은 장부를 청산했고, 점원은 열심히 상과 의자를 닦았는데 이따금씩 가게의 유일한 손님을 훑었다.

그건 창가에 앉은 청년으로 그는 아주 일찍와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수시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상 위의 술과 물도 내내 건들지 않았다. 옆에 놓인 검을 보면 그가 강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많은 강호인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술집의 장사가 많이 좋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전부 동정으로 떠났고, 어떤 이들은 점원들에게 소식을 물어보기도 했다. 대부분 동정의 그 위민이라는 부유한 상인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 많은 강호인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술집의 장사가 많이 좋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전부 동정으로 떠났고, 어떤 이들은 점원들에게 소식을 물어보기도 했다. 대부분 동정의 그 위민이라는 부유한 상인에 관한 것이었다.

설락(薛乐)이 고개를 돌려 탐색하는 눈빛을 마주하자 직원은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닦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묵묵히 한숨을 쉬며 일찍 도착한 것은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고, 상대방의 성미로는 해가 지기 전에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셈이다.

설락은 그 편지를 품에서 꺼내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았는데, 문득 누군가가 맞은 편에 앉은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상대방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청하려는데 고개를 들자 척조석이 술잔을 들고 향을 맡는 것을 보았다.

“자네 와서 앉은 겐가?” 설락은 어리둥절했다.

척조석도 어리둥절해져 사방을 둘러보고 기이한 듯 말했다. “네가 고른 자리가 아니야?”

“내 말은.” 설락은 술집에 있는 다른 두 사람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 곳은 말하기 좋은 곳이 아니잖나.”

“술이 있으면 좋은 곳이지.” 척조석은 잔에 든 술을 창문 밖으로 쏟아부었다. 그는 답하지 않고 점원을 불러 다시 주전자를 주문하고서야 설락에게로 돌아섰다. “여년 간 보지 못했는데 이런 맹물을 사주다니?”

“이른 아침부터 독한 술을 마시다니.” 설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너는 제 시간에 오지 못했잖아.”

척조석은 살며시 웃었다. “이왕 네게 도움을 청했으니, 태도를 바르게 해야지.”

“몇 년 동안 못 봤는데 갑자기 편지를 받아서 깜짝 놀랐어.”

“원랜 너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만,” 척조석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 천하에 내 친구는 너 밖에 없어. 너 외엔 누가 나를 도와줄지 상상이 안 돼.”

“그런 말 말아.” 설락이 웃으며 말했다. “그 당시 척조석의 이름이 움직인 강호가 바로 오늘이었고, 너와 친교结交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잖아.”

“척조석과 친교하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마교의 좌호법은 옹호해줄 사람이 있을까?“

설락은 표정이 변하여 급히 그의 말을 가로막고 경계하며 주위를 보았다. 주인은 여전히 계산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이쪽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척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 “긴장하는 것 좀 봐. 저 가게 주인은 귀가 어두워서 네가 더 크게 말해도 그는 들을 수 없어.”

이때 점원은 뒷부엌에서 발을 걷어내며 나와 술을 내려놓고, 또 술안주를 두 접시 들고 척조석에게 몸을 굽혀 말했다. “객관, 천천히 드세요!”

척조석이 은 부스러기를 내밀자, 점원은 연거푸 거절했다. “아니, 아닙니다. 이건 저희 가게에서 드리는 거예요, 돈은 받지 않아요!”

“계산 말고, 당신이 받으십시오.” 척조석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점원은 가게 앞의 주인을 힐끗 보고는, 돈을 소매 속에 숨기고 싱글벙글 웃었다.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말이 끝나지 눈치껏 멀찌감치 물러났다.

설락은 그제야 끼어들 수 있었다. “자네 여기 술 마시러 자주 왔나?”

“이전에 몇 번.” 척조석은 잔을 가득 채웠다. “노교주를 대신해 동분서주(东奔西走)하느라 갈 곳이 많아져서. 하서(河西)에서 남강(南疆)까지 거의 다 가봤어.”

“풍광은 어땠나?”

“아무리 좋은 경치도 재미없을 정도로 많이 봤지.”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는데, 설악이 술잔을 들고 느릿느릿 명료하게 입을 열었다. ”편지에서 네가 나에게 뭘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동정의 명검대회와 관련이 있을까?”

“정확히 맞췄어.” 척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락은 약간 무거운 표정으로 마음을 다잡은 듯 술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너와 난 절친한 벗이고, 너와 헛되고 싶지 않으니 솔직하게 말할게. 네가 나를 믿고 신분을 알려주었으니 난 고맙고 개의치 않아. 명검대회 때 강호의 호걸들이 도전하여 겨루고 승자는 검을 얻는다고 들었어. 네가 도와달라면 거절하지 않겠지만, 만약 내가 너를 도와 검을 빼앗아야 한다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어.”

척조석은 겸사겸사 그에게 절임 채소를 집어주며 상당히 좋다고 여겼다. “너 남들이 그렇게 간절한 걸 거절해?”

“미안하게 됐어.”

척조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볍게 웃었다. “배흠은 확실히 그 검을 원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

설락은 멍해졌다.

척조석은 술잔을 비우고 담담히 말했다. “난 반야교를 떠나려고.”

“정말?” 설락은 놀랍기도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마교는 용담호혈[각주:5]과 같으니 떠나게 해줄지가 의문이군. 하물며 너는 어려서부터 반야교에서 자랐고, 또 좌호법이라는 중직에 있으니 그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남더라도 아무도 날 가만두지 않을 걸.” 척조석이 말했다. “배흠은 죽을만큼 늙었어. 오로지 장생결을 찾아 자신의 목숨을 잇고 싶어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그로 하여금 불로장생하게 하여 다시 정상에 돌아오게 하는 거야. 그 배조는 형제를 다 죽이고 그의 아버지도 얼른 죽길 바라고 있어. 그도 사람을 파견해서 장생결의 행방을 찾고 교주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독보하려고 했고. 현재 교내에서는 암류가 몰려오고 있는데, 우호법과 그 사당주는 이미 입장이 불불명하겠지. 난 가지 않아, 남아서 다른 사람들과 묻히라고?”

“네가 줄곧 노교주를 위해 심법을 찾아왔기 때문에, 소교주가 널 용납할 수 없어 하는 건가?”

“용납했다면 어쨌을까.” 척조석이 잔을 흔들자 술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향기가 새어나왔다. "옛 교주 밑에서 소주 밑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앞잡이 노릇을 하지 했겠지?”

이 말을 그는 가볍게 말했지만, 설락은 오히려 귀에 거슬리게 들려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럼 어떻게 빠져나갈 건지, 계획은 있나?”

척조석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살아서는 방법이 없으니 죽는 수밖에 없지.”

설락은 곤혹스러워했다.

“명검대회는 좋은 기회야, 다른 건 네가 개입할 필요 없어.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시체가 나라는 것을 믿게하면 돼.”

이는 너무 간단하다. 설락은 자기도 모르게 추궁했다. “그것 뿐인가?”

“내가 강호를 돌아다니는 것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교 안에서내 신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든.” 척조석이 말했다. “강호 전체가 척조석이 죽었다고 믿게 만들어 그 소식이 교에 전해지면 알 것은 자연히 알게 될 거고. 그때 배흠이 의심하고 다시 사람을 보내 추적해도 이미 시신은 썩었을 테니.”

설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해, 난 반드시 전력을 다할 테니.”

“그렇게 정중할 필요 없어.” 척조석은 그들 두 사람의 잔을 가득 채우고 그에게 잔을 권했다. “일단 고마워.”

설락은 잔을 들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설령 죽음으로 몸을 빼낸다해도, 반야교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한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은둔해야할 것이다.

“누가 알겠어, 인연을 봐야지.” 척조석이 소리내어 웃었다.

술잔이 서로 부딪히며 가볍게 울렸다. 창 밖의 풀잎에 맺힌 이슬이 마르고, 해가 점점 치솟자 동정으로 통하는 길에 행인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쾌마 두 마리가 그 속에 섞여 먼지와 함께 달아났다.

  1. 莺莺燕燕. 꾀꼬리와 제비. 봄철의 풍광에 드러난 기후 또는 어느 공동 목표 주변의 많은 여자를 이른다. [본문으로]
  2. 见不得人. 면목이 없거나 낯을 들 수가 없음을 뜻함. [본문으로]
  3. 儿. 이름 또는 아명 뒤에 ‘아(儿)’를 붙여 부르는 것은 애정 표현으로 주로 어른이 아이를 부를 때 많이 쓰인다. [본문으로]
  4. 비보(秘宝)란, 남몰래 감추어둔 보물을 뜻한다. 비보심법은 남몰래 감추어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다. [본문으로]
  5. 龙潭虎穴. 용담호혈. 용이 사는 연못과 범이 사는 굴. 지세가 험준한 곳.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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