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杯茶/회인怀刃

10장.

丹英 2025. 4. 28. 21:11
……작은 녀석, 생각보다 꽤 세심한 걸.



이 한 마디는 마치 평지에 울려 퍼진 천둥 같아, 현장에 있던  이들의 가슴에 가득한 의혹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허탈한 빗물처럼 쏟아지게 했다.

강리는 고개를 들어 위가의 날 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으나,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위가 또한 피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조월 낭자에게 묻습니다. 어젯밤, 그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까?”

“저는……” 조월은 강리를 한 번, 위가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는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 제대로 살피지 못했습니다.”

위가는 말을 이었다. “저는 어제 무대에서 내려온 뒤, 심히 부끄럽고 마음이 편치 않아, 실례를 사과하러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겨우 시간이 생기자, 하인들이 그가 이미 서쪽 정원으로 돌아갔다고 하기에 약을 들고 갔지요.”
그는 말을 멈춘 뒤,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허나 강 소협의 방에 불은 밝혀져 있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멋대로 문을 열 수는 없어, 문 밖에서 몇 시진이나 기다렸지만 끝내 그를 보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젯밤 처마 위에서 몰래 엿본 광경을 떠올리며, 척조석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이 소년은 제 아버지에게 허울 좋은 겉치레를 배운 모양이었다. 말은 빈틈 없고 그럴 듯 했지만, 어젯밤 위가가 사람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몰려간 모습을 보면, 사과는 무슨, 강리를 골목으로 끌고 가 두드려 패려했던 것이 자명했다.

말을 마친 위가는 얌전히 아버지 곁으로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청산파의 두 심 공자가 서로 눈빛을 주고 받다가, 결국 심지언이 먼저 말문을 뗐다. 그가 강리를 향해 물었다. “강 소협, 어젯밤 당신이 어디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리가 대답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 심지언은 말문이 막혔다.

척조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으나, 다행히도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심신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둘째 동생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무슨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거지?”

강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적인 일입니다.”

“하! 사적인 일? 어젯밤 죽은 이가 나오고, 검이 사라진 마당에 이 산장 내부의 누구에게 사적이 남아있단 말이냐!”

하지만 심신사의 불같은 꾸짖음도, 고요히 가라앉은 정적 속에서는 힘을 잃었다. 강리도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가 저 낭자와 그렇게 친했는데, 설령 말한다 한들 믿을 수 있을까? 혹시 둘이 공모하고, 한 사람이 정거한을 죽이고 다른 한 사람이 검을 훔친 거 아냐?”

조월은 분한 눈빛으로 주위를 노려보았으나, 각기 다른 표정을 지은 얼굴들은 단정하며 공명정대하여 누가 그런 악독한 말을 했는지 가려낼 수 없었다.

“제자가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스승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사범이 불쑥 제안했다. 눈빛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 말은 방금 전 누군가의 추측 뒤를 이어 나온 탓에, 사람들은 저절로 이어서 생각하게 되었다. 강리에게 혐의가 생긴다면, 척조석 또한 결백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 척조석은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볕 한 줄기 새어들지 않던 회랑 아래, 순식간에 수많은 뜨거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는 오히려 여유롭게 웃었다. “뭡니까, 근거 없는 몇 마디 말에 나까지 의심하겠다는 겁니까?”

“아이쿠, 여러분. 농담입니다, 농담!”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위민은 부랴부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이들이 조월을 몰아붙이건, 강리를 몰아붙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자기 집 지반에서 척조석과 불화를 빚게 된다면, 명문 대파는 엉덩이를 털고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주인인 그는 뒷수습을 해야할 터였다.

아무런 근거 없이 억측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리가 전에 무대에서 보여준 완고함을 본다면, 그가 입을 열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심지언이 눈짓을 보내자, 심신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언은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당장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터라, 다들 마음이 불안한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서로 조금씩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다시 설락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언이 예전에 설 대협을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그의 안목을 믿습니다. 그러니 척 대협 역시 가벼운 사람이 아닐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강 소협께서 답변을 원치 않는다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척 대협께서는 당분간 강 소협 곁을 한 걸음도 떠나지 않고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이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들의 마음을 놓이게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척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어렵지 않으니까요.”

그제야 심지언은 조월을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월 낭자,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신 말고는 정 대협이 어젯밤 숲으로 갈 것이라는 걸 아는 이가 없습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월은 냉랭한 얼굴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더는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는 청산파 제자들에게 손짓했고, 근처에 있던 두 제자가 검을 거두고 다가가 그녀를 데리고 떠났다. 심지언은 남은 세 사람에게 고개 숙여 공수하고, 모두를 이끌고 떠났다.

그 무리는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정원은 순식간에 텅 비었고, 나무 위의 매미들은 실컷 구경했다는 듯 다시 목청껏 울기 시작했다.

조월은 따로 방에 감금되었다. 먹고 마시는 것조차 방 안에서 해결해야 했고, 문 앞에는 청산파 제자들이 번갈아 가며 지켰다. 새 한 마리조차 접근하지 못할 분위기였으니, 하물며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야 알게 되었다. 심신사가 조월을 데려오러 온 한편, 광금종의 임 아가씨가 몇몇 여제자들을 이끌고 서쪽 정원으로 가 조월의 방을 수색했으나, 결과는 허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장을 안팎으로 샅샅이 살펴본 결과, 여전히 조월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 한, 그녀는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 귀운산장 사람들도 도착할 예정이었다.

정거한이 죽고 검이 사라진 사건은, 강호의 규율에 따라 세 가문이 함께 논의해 처리해야 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심신사는 즉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했다. 귀운산장은 낙양에 위치했기에, 아무리 빨라도 보름은 걸릴 것이라 여겼으나, 뜻밖에도 저녁 무렵 회신이 도착했다. 회신에는 소장주가 마침 인근에 머무르고 있어,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오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원문을 나서던 길에, 설락이 척조석에게 낮게 말했다. “귀운산장의 소장주의 나이가 어리다고 들었네. 열일곱이나 열여덟쯤 되는데, 최근에야 강 맹주가 허락해 강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더군.”

그는 멀지 않은 곳의 강리를 힐끔 바라보았다. “자네가 보기엔 어떻나?”

“내기나 할까?” 척조석이 말했다.

“좋지.”

“그럼 좋은 술 한 단지를 거는 것으로 하겠네.” 척조석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설락을 문 밖까지 배웅한 뒤, 다시 정원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정원엔 어둠이 깔려 있었다. 강리는 여전히 한 그루 나무 아래 희미한 빛 속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척조석이 다가서자, 그도 작별을 하려는 듯 입을 열려 했다. 다만 척조석이 한발 앞서 물었다.

“자, 그럼 우리 둘은 오늘 내 방에서 잘까, 아니면 네 방에서 잘까?”

강리는 순간 얼이 빠진 듯 굳어버렸다.

척조석은 재밌어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참 재밌는 어린 제자야. 그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물었다. “왜 그러지? 심 이공자가 네게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고 지켜보라고 했는데, 못 들었어? 아니면———후회라도 하는 건가?”

강리는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답하기 싫은 말이라고 해도, 사부는 괘념치 않는다. 다만 정말 후회된다면, 지금이라도 그를 쫓아가서 고백해도 늦지 않을 테지.” 척조석은 빙그레 웃으며, 청산파 사람들이 떠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참 뒤에야 강리가 이를 악물듯 말문을 열었다. “당신 방에서요……”

척조석은 한껏 웃음을 터뜨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

강리가 다시 이 금실로 수놓은 휘장을 둘러싼 침상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위민이 척조석에게 베푼 우대는 이 침상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넓고 부드러운 침상은 한 사람쯤 더 올라도 모자람이 없고, 강리가 이리저리 뒹군다 해도 넉넉할 만큼 충분했다.

다만 이 어린 제자는 뒹굴기는 커녕 침상에 가까이 갈 생각조차 없었다. 밤은 이미 깊었건만, 그는 뿌리라도 내린 듯 서안 뒤에 고요히 앉아 있었고, 흔들리는 등불 아래에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척조석은 침상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느긋하게 그를 불렀다. “소협, 밤이 깊었으니 이제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리는 “음” 소리로 답하고 책을 덮었다. 다만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은 없어 보였다. 척조석이 한 번 더 재촉하려던 찰나, 강리는 조용히 서안에 몸을 엎드리더니 팔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척조석: “……”

천지신명이여, 제가 그렇게까지 미움을 사는 인물입니까?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결국 울지도 웃지도 못한 척조석은 긴 다리를 뻗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는 순간, 서안 위의 등불도 스르르 꺼졌다.

……작은 녀석, 생각보다 꽤 세심한 걸.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람 소리가 잦아들자, 천지의 소리가 점차 뚜렷해졌다. 문 틈으로 스며든 한 줄기 은빛 바람이 그의 손가락을 감아오는 듯했다.

척조석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서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침상에서 내려오고는, 문을 밀고 나섰다. 마침 벽 너머로 스치는 한 점 그림자가 보였다. 척조석은 가볍게 웃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이때는 밤이 가장 짙을 때였다. 사방의 등불은 듬성듬성 흩어져 있고, 그 그림자는 마치 달빛을 가린 구름처럼 가볍게 스쳐갔다. 소리를 내지 않고 뒤쫓아야 했기에, 아무리 척조석이라도 꽤나 공을 들여야 했다. 그림자는 돌다리를 건너고, 몇 채의 정원을 스쳐가더니, 불현듯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는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붙인 채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뜻밖에도 텅 빈 공터였다.

두 채의 정원이 만들어낸 푸른 돌바닥으로 이루어진 공터.
그 앞으로 나아가면 집의장의 높고 웅장한 외벽이 가로막고 있어 숨을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방으로 통하는 길은 열려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척조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애초에 그저 재미 삼아 따라온 것일 뿐이기에, 그는 곧장 다시 돌아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원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의 걸음이 멈췄다. 뒤이어 흥미로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어렸다.

방 안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그 빛이 정원을 가득 밝히고 있었다.

강리는 마치 막 서안에서 몸을 일으킨 듯, 손에 등촉을 쥔 채 불을 더욱 환하게 밝혀놓고 있었다. 그가 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을 보자, 강리는 드물게 먼저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이 깊은 밤에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깨어나 보니 사부님께서 안 계시기에, 찾아 나설까 했습니다.”

척조석은 대꾸도 하기 전에 웃음이 먼저 새어나왔다. 강리는 등불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이어서 그 어느 쪽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 척조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잠시 일어나서 바람을 쐬었을 뿐이다. 왜 그러느냐?”

“……” 강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거뒀다.

아마도 준비해둔 말이 있었을 것이다. 이 한 마디에 모두 막혀버린 모양이었지만.

척조석은 다시 침상으로 가서 누웠다. 강리는 다시 불을 껐다.

하지만 잠은 이미 절반 이상 달아나버린 뒤였다. 척조석은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서안 위에 엎드려 잠든 소년의 흐릿한 윤곽을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몸집은, 심지어 약간은 연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는 날카로운 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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